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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은 펑펑 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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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은 펑펑 우세요
  • 전민일보
  • 승인 2016.10.04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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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처녀시절부터 우리 도서관의 낭독자원봉사자로 활동하던 한 여성으로부터 한통의 손전화를 받았다.

“송 관장님, 차 한 잔 사 주세요.”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듯 목소리 톤이 낮고 우울했다.

“네...... 사드려야죠”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약속장소인 한옥마을 전통찻집으로 갔다. 활달한 성격으로 기억하고 있는 40대 중년부인은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여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

“....”

여인은 나의 애타는 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훌쩍거리기만 했다.

“자, 여사님 따끈한 대추차 좀 드시고 마음 좀 진정시키세요.”

“죄송해요, 관장님.”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은은한 가야금 연주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찻집 주인이 우리의 사연을 혜량이라도 했음인지 단아하고 청아한 멜로디풍의 음악을 틀어준 것이다. 나는 센스 있게 행동해준 주인장이 한없이 고마웠다.

이윽고 여인이 입을 열었다.

“관장님, 얼마 전 남편이 구조조정됐어요.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난감했다.

“월급 안 나온 지도 3개월 이구요. 큰애가 이제 중2 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인데 교육은 어떻게 시키라구요?”

여인은 계속 코를 훌쩍이며 태산처럼 부푼 생계와 애들 교육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아니,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요?”

나는 추임새를 넣으며 여인의 하소연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우리 신랑 한눈 팔지 않고 한 직장을 위해 일한 죄밖에 없어요. 우리 어떻게 하면 좋아요”

내가 한국은행 총재라면 돈을 찍어내고 고용부장관이라면 일자리를 팍팍 만들어 줄텐데,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난들 어찌하란 말인가.

“관장님, 우리 애들이 불쌍해요”

여인은 계속 울먹이며 비통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울게 내버려 두는 게 났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사님, 실컷 우세요. 남의 눈치 보지 마시고...”

요즘 경기공황에 부동산침체에 가계부채급증으로 서민들의 삶이 고달프다고 한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사님, 살면서 가끔은 울어야 해요. 곪은 상처를 짜내듯 힘겨운 세상 살아가면서 가슴 한가운데 북받치는 설움을 때론 맑은 눈물로 씻어내야 해요.”

내 말에 응대라도 하듯이 여인은 더 큰 목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마치 통성기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마냥 의자에 앉아있기가 민망하여 대추차를 추가로 주문해 마셨다. 여인의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이윽고 여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관장님, 실컷 울었더니 속이 후련해요”

나는 대답했다.

“여사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희망의 섬에 도착하실 거예요, 힘내세요.”

“관장님, 고마워요. 우리 신랑과 찾아와도 되죠?”

“그럼요. 언제든지요.”

물로 몸을 씻듯, 때로는 눈물로 영혼을 씻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 눈물이 ‘나’를 넘어서야 한다. 내가 흘린 눈물 만큼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하고 그 눈물을 말끔히 닦아주는 것, 그것이 힐러의 길이 아닐까…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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