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나무를 만나면 다양한 변신을 하게 된다.
책을 베낀 서예작품을 목판에 새기면 ‘목판본’이 되고 절이나 사당, 집 이름 등을 나무에 새겨 걸게 되면 ‘현판’, 시구(詩句)를 나무에 새겨 기둥에 걸면 ‘주련(柱聯=楹聯)’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나무의 자연 미감과 서예의 예술성을 융합하는 지혜를 가졌다.
조상들의 지혜는 오늘 날에도 이어져 이른 바 ‘서각’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예 장르를 형성했다.
‘서각’은 전통서예작품이든 추상성이 강한 현대적 작품이든 칼로 새겨 벽에 걸어 두고 감상함으로써 서예의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서각예술이 대중들에게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소리문화의전당 2층 전시실에 칼끝에서 피어나는 서예 ‘철필의 노래’전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명의 작가들이 출품한 다채로운 서각 작품들을 대형 병풍 형식으로 전시해 눈길을 잡아 끈다.
작품에 새긴 시구(詩句)는 모두 한글시를 한문의 7언구 한구절로 압축해 한글 문장의 멋과 한문 문장의 맛을 절묘하게 융합한 김일로(金一路) 시인의 작품이다.
비엔날레 조직위 관계자는 “서각은 서예의 영역확대라는 측면에서 매우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전주의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현판과 주련문화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글과 한문을 동시에 중시해야 할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시라는 생각에 이번 전시의 소재는 모두 김일로 시인의 시에서 찾았다”고 덧붙였다.
박해정기자
저작권자 © 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