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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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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공화국
  • 전민일보
  • 승인 2015.08.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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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어렸을 때 즐겨하는 놀이가 딱지치기였다. 친구 가운데 종철이는 우리보다 체격이 훨씬 크고 힘이 셌다. 공 멀리던지기를 잘하여 시내에서 치르는 시합에 나가 늘 1등을 했다.

그래서 종철이와 딱지치기를 하면 밤새 접은 딱지를 모두 잃었다. 힘으로 결코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딱지 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딴 것을 다 갖지 않고 반 이상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잃어도 반 이상 돌려받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와 단순히 힘만 쓰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기술을 쓰고 있어 딱치 치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많이 가지고 힘 있는 사람이 저들만 호사를 차지하고 누리는 구조이다. 권력 있는 사람 주위에 눈도장이라도 찍으려고 사람이 몰리고, 돈 있는 사람 주변에 흘린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사람이 밀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구조에서 사회정의는 권력이나 돈 앞에서 무기력하게 매몰되거나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어떤 연줄을 잡느냐에 따라 출세가 판가름 나는 세상에서 아무 연줄도 없는 대다수 평범한 국민은 한낱 찬밥과 같은 존재다.

돈 있고 백 있는 사람이 영원히 승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패자가 되는 ‘승자독식공화국’에서 힘없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을 리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실력을 쌓아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다. 이 백 저 백을 들고 치고 들어오거나 이 줄 저 줄을 타고 내려 온 사람이 쓸 만한 자리를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시내에 볼일이 있어 작업실에 차를 놓고 모처럼 시내버스를 탔다. 같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바로 뒷자리에서 발랄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귀를 세우고 엿들었다.

내용인즉 수업시간에 책만 읽어 내려가는 모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었다. 실력이 없어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 학년에 배정하는 것을 거부하기까지 한다는 말 뒤에 이사장 친척이라 학교에서도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사회에서 경쟁은 무의미하다. 이사장 친척이라는 연줄을 타고 애초부터 낙점된 상태에서 실시한 경쟁은 불공정한 경쟁을 위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 경쟁의 틀에라도 편입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 있는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동분서주한다. 정치인은 공천을 받으려고 힘 있는 유력자 옆에 서서 사진 찍기에 열중한다.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성공하는 이력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고 폭행을 일삼은 교수가 구속되었다. 그 교수에게 줄을 서야 자신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오랫동안 폭행을 당하면서도 쉬쉬 했다는 것이다.

이 줄 저 줄을 타고 내려온 사람이 모인 조직은 결집력이 약하고 자기를 희생하려는 정신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기관장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 사람이 든든한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 내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나 홀로’식 삶을 살 것이다.

겉으로는 수긍한 척하고 돌아서서 뒷담화를 즐기며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만 키울 것이다. 이런 조직이나 사회는 건강할 리 없다. 구성원이 서로 내 일처럼 여기고 화합하고 헌신할 리 만무하다.

돈 있고 힘 있고 백 있는 사람이 이것저것 몽땅 다 입에 삼키고 사는 사회, 연줄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 이런 ‘승자독식공화국’은 우리사회를 썩게 만들고 비대증과 왜소증 환자만 양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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