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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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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 전민일보
  • 승인 2024.05.07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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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비극 6·25, 그것을 실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두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도 예외가 아니다. 친지는 물론 이웃에게도 다정한 분이었다는 대고모, 그 가족 모두가 학살당할 때 마침 광주 친구 집에 가 있던 아드님 한 분만 살아남았다. 잔인한 학살 주역들은 마을에서 같이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학살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좋은 사람이었는데” 혼자 남은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얼마 전, 6대조 시제를 모시러 가는 길에 문원 당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나지 않는다. 6·25때 아버지를 학살한 사람 중에 친구 아버지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해방 전후 발생한 수많은 참상은 그 후 비극의 예고편이었다. 지금 그 당시를 평가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거의 멸문지화를 당한 대고모집안과 세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당숙에게 4·3을 설명하는 방식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거기에 대한 답은 김대중 대통령이 오래 전 내놓았다. 유념해야 할 것은 타인의 비극에 대한 오도된 감정과잉이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우리에게 소모적인 메아리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이성에 의해 절제된 감정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전북인은 과연 얼마나 이성적인가?

“장 선생, 내가 퇴계 종손도 만나 얘길 나눠봤지만 안동 사람은 안동을 잘 모릅니다. 같은 이치로 예산 사람도 예산을 잘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장 선생이 예산 역사를 잘 다뤄줘서 고맙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하신 이문원 선생님께서 예산을 떠나는 내게 주신 말씀이다. 학연, 혈연, 지연 아무것도 없는 예산에서 지낸 8년 3개월, 참으로 좋은 분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두 가지 부분에서 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라북도 사람 눈으로 바라 본 충청도인 그리고 밖에서 내 고향 전라북도를 바라보는 시각. 이문원 선생님 말씀을 빌려 묻게 된다. 전북인은 전북을 잘 알고 있을까?

평화민주당 시절, 내가 전북에서 왔다는 얘길 듣고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그 동네는 어떻게 한 정당에 그렇게 몰표를 줍니까? 그게 민주주의 맞아요?”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다른 곳 모두 여당 지지인데 호남이라도 야당을 해야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을까요?”

그런데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같은 요지 다른 버전의 질문을 받았다. “도대체 그 당 찍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어. 그게 제대로 된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전북에서 지지하는 정당만 남게 되면 그거야말로 민주주의 위기 아닐까요? 그 질문을 다른 지역에서 똑 같은 형태로 전북인에게 되묻고 있습니다”

현실진단과 변화방식에 대한 생각은 다양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제다. 다수가 동의하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가 불편하고 그 생각이 정의에 반한다고 얘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소수는 상대적이다. 소수 중 다수가 그 집단 내 소수에게 적대적이라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정치적 선택은 물론 잼버리, 새만금 그리고 특별자치도까지 전북인이 생각하는 그림과 다른 지역에서 바라보는 그림자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떠올리게 한다. 전북인의 결의와 소망이 공허하지 않을 필요조건은 전북인 스스로에게 있지만 충분조건은 그 공동체 밖에 존재한다.

모두가 전북인인 자리에서 다수가 동의하는 방식과 그 결론이 더 큰 공동체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정신승리로 바꿀 수 있는 결과는 없다.

관대하면서 편협하고 여유가 있으면서 조급하며 이성적이지만 감정적이고 겸손하지만 자존감이 결여된 그림자. 진정 내 고향 전북인에겐 찾아볼 수 없는 이율배반의 모습이길 바란다.

인조 때 전주 판관으로 온 신달도(申達道) 묘갈명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주는 호남의 큰 고을로 평소 다스리기 어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0년 전 외지인이 바라 본 전주 모습과 오늘 전주 모습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뫼비우스의 띠엔 끝이 없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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