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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레테의 강 저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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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레테의 강 저편에는
  • 전민일보
  • 승인 2013.10.30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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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여행 중 로마에서 한 미국 대학생을 만났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 “너도 카프카를 좋아하나?” 그때 나를 보고 웃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내 눈에 비친 그의 표정에선 냉소가 읽혔기 때문이다. 마치 ‘네가 카프카를 알아’라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그와의 만남에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느껴졌다면 오해일까.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내가 대학에 들어가 접한 카프카(F.Kafka)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변신(Die Verwandlung)]에서 카프카는 인간 본성과 함께 그 인간 사이의 개별적 관계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통찰처럼 인간은 결국 모두가 ‘그레고르’이다. 또한 동시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후 홀가분함에 피크닉을 떠나는 공범이자 방관자의 모습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기서 죽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이라고 얘기했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 조차 죽음에 초연하지는 못했다. 잡스에게 왔듯 사람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in Arcadia Ego)’는 죽음의 명제처럼.
이상향인 아르카디아에도 어김없이 존재하는 죽음.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인간에겐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존재한다.
나는 수년 전 의사에게서 ‘시한부 삶’선고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오진으로 판명되었지만 그것이 확인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나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길지 않은 그 시간 속에서 내린 결론은‘죽는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선고받은 그 순간 내게 다가온 공포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변신한 그레고르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패배자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며칠 전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이 우리 곁을 떠났다. 더 이상 주찬권이 드럼을 연주하는 들국화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를 애도한다. 그리고 그에게 인사를 한다. 고맙다고. 세월은 전설을 남긴다. 그리고 들국화도 그렇게 전설이 되어갈 것이다. 산 자에겐 아름답게 보일 그것이 남겨진 자에게는 허무와 공허함으로 다가오는 전설. 들국화의 음악을 지금 듣는 20대와 들국화와 젊음을 함께한 세대가 느끼는 주찬권의 공백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찬권이나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우리가 알 수 는 없다.
잡스의 말처럼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이 그 최고의 발명품을 받아들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만의 문제가 될 수도 없다.
주찬권과 스티브 잡스가 곁을 떠나갔듯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리라.
그때 나와 같이 들국화를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들국화를 추억의 명곡 쯤 으로 듣는 청중뿐이리라. 죽음이 두려운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신과 교류하고 소통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미워할 대상이라도 있다는 것은 살아갈 충분한 이유다.
주찬권의 죽음이 있기 얼마 전 ‘맥도날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주찬권과는 달리 그녀의 죽음에는 애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워할 대상도 없었던 그녀. 아마도 그녀가 죽음 앞에서 두려워했던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이제 그녀를 레테의 강 저편에 인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난과 조롱이 없는 그곳이 어쩌면 죽음이 그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농촌지도사 장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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