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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병초 시인,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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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병초 시인,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 시집 출간
  • 소장환 기자
  • 승인 2024.04.10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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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려고 전봇대 뒤에서 버스 기다리는데 그는 보도블록에 맨몸을 깔았다 내가 담배를 빼무니 저도 담배를 빼문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니 저도 땀을 닦는다 바닥이 지글거려도 물 한 모금 달라는 소리가 없다 녹다 만 쓸개간장을 더 납작하게 지지는가 보다

- '내 그림자' 전문

전주에서 태어나 1998년 '시안'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병초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걷는사람·1만 2000원)가 출간됐다.

시인이 8년 만에 낸 이 시집을 펼치면 고단한 삶의 행군은 여전하고 긴 세상살이에 따듯한 아랫목 하나 못 찾았어도 '성냥불 켜 주'(가만히)는 마음이면, '긴 겨울잠을 털어 버린 듯/는실날실 봄바람 타는 버들가지들'(버들가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노래하는 59편의 시를 만나게 된다.

시인이 평생토록 가슴에 품은 사랑, 시에서 등장하는 '옥이'가 누구인지 몰라도 시집을 넘기는 독자들 누구나 옥이가 되어, 옥이를 목메어 부르는 마음이 되어, 봄바람에 날아든 한 장의 연서(戀書) 같은 시를 발견하게 되리라.

이번 시집에서도 그의 언어는 고향 전북의 토속 언어와 서정에 크게 기대어 포근한 어머니의 품, 첫사랑의 따스함 같은 감정들을 시로 풀어내고 있는 한편, ‘농성일기’라는 부제를 단 3부에서는 대학 비리를 고발하는 주체로서 천막 농성을 하며 느낀 감회를 뼈아픈 세상살이에 빗대어 써 내려간 기록이 이어지기도 한다.

전북의 방언은 부드러우며 된소리가 별로 없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말을 할 때 마치 노래하듯 ‘겁~나게’, ‘포도~시(겨우)’ 등과 같이 늘여 빼는 가락을 넣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리듬감이 이병초의 시에서는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기저로 작용한다. 간조롱히(가지런히), 짚시랑물(낙숫물), 눈깜땡깜(얼렁뚱땅), 깜밥(눌은밥), 당그래질(고무래질) 같은 말들이 되살아나 우리의 귀를 저편으로 트이게 하고, 입술을 쫑긋거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시인의 맑은 눈으로 발견한 '오디별', '시냇물벼루' 같은 표현들이 그림처럼 선연히 그려지며 우리 앞에 한 자락의 시냇물을 데려다 놓기도 한다.

해설을 쓴 정재훈 평론가는 “아무리 '내 몸과 마음이 처음부터 유배지'(코스모스)였다고 해도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쌀알'처럼 작은 빛 때문"이라면서 "연약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일용한 양식들은 하나같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고, 이것들은 계속해서 살아 있으라는 신호가 되어 내 머리 위로 똑똑 떨어니다"라고 짚었다. 이병초의 시가 품고 있는 온기를 ‘사지(死地)에서 온 편지’라고 표현한다.

이병초 시인은 "삶의 평수가 갈수록 줄어들어도 그 덕에 산천을 떠돌며 별별 새소리에 몸을 맡길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학교가 그리운지 이따금 볼에 와닿는 바람은 살가웠고, 습자지에 나침반 달린 손목시계를 그려서 내 심장에 꽂아 주었던 옥이가 펑펑 다가올 것 같아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병초 시인
이병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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