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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리고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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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리고 2024년
  • 전민일보
  • 승인 2024.04.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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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화한 시기는?’ 오래전, 외무고시 1차 시험지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저명한 학자 3명의 견해가 모두 달랐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당시 시험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아서 무엇이 정답으로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사실, 이 지문은 객관식 평가문제로 적절하지 않다. 여기서 묻게 된다. 청나라나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정은이 폼페이오에게 얘기했던 한반도의 티벳화나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연해주 한인에 대한 디아스포라의 전면화? 결론을 내야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한국사의 존속과 미래를 위한 방향성을 고민할 하나의 주제로 의미가 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 얘기가 아니다.

1987년 6·29 직후, 부산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가 주최한 기청대회가 있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두사람이 있다. 신학자 안병무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상호다. 독일 신학계에서 까지 탁월함을 인정한다는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강연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아마도 내 무지의 소산일 것이다. 하지만 10여명이 함께한 분과모임에서 말을 나눈 우상호에 대한 기억은 비교적 뚜렷이 남아 있다. 당시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대부분 마르크스에 심취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분과원들로부터 개량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던 내게 어떤 이가 이렇게 말했다. ‘선진적 막시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혼자 이렇게 되뇌었다.

‘이 친구가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고나 이렇게 얘기하나?’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가 ‘오리엔탈리즘’ 첫 장도 안 봤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얘기한다. “동양인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하는 존재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가 얘기한 역사발전 법칙이 적용되는 대상은 서유럽이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개념을 통해서 보여준 마르크스의 인식저변에는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 시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한국사에 봉건제가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흔적을 만들어내려는 일련의 시도들도 그 학문적 노력과 성취여부와는 상관없이 내적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1987년 부산 그 자리로 돌아가 보자. 내겐 그렇게 적대적(?)이던 그 분과원들이 우상호에겐 친절(?)했다. 내가 그들과 동의하는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 그나마 이성적(?)이었던 사람이 우상호였다. 그 얼마 후 우상호가 뉴욕타임즈 기자회견이 문제되어 구속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우상호를 구속할 정도의 정권이라면 지속이 어렵겠다’

1980년대 한반도 남쪽에서 유행한 막시즘은 오래된 미래의 현실강림이자 분단모순이 응집된 결과였다. 윤치호가 자신의 일기에 기술한 것을 보면 일제 강점기 이미 함경도에서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볼셰비키를 얘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자생적 공산주의자 중에는 장성택의 부친도 있었고 김일성은 그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930년대 함경도와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의 마르크스와 볼셰비즘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자리했을까? 이제 2024년이다.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계 미국학자다. 그는 한국에 우호적이었다. 그가 서울에 왔을 때 사무엘 헌팅턴이 자신과 같은 호텔에 묵게 된 것을 보고 서울대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사무엘 헌팅턴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고 그를 초청했나요?”

‘문명의 충돌’에서 일본과 중국은 독자적 문명권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한국은 언급되지 않는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한국인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선 그토록 분노하면서 중화제국주의에는 왜 침묵하나요?”

조선의 사림은 자신들이야말로 도덕으로 무장한 군자라고 자부했고 결국 조선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정권을 담당했다. 하지만 조선을 건국해 토대를 만든 것은 그들이 그토록 숭상한 정몽주가 아니라 정도전이었다.

1987년 이 땅엔 정몽주가 필요했지만 2024년 오늘 우리에겐 정도전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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