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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를 판각한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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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를 판각한 김정호
  • 전민일보
  • 승인 2023.12.0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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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김정호를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일제였다. 우리 전통 지리서인 ‘산경표’가 세상에 알려지면 우리 민족정기가 되살아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고산자의 주가를 올려 준 것도 다름 아닌 1861년 제작된 목판본의 ‘대동여지도’다. 김정호는 국토정보의 효율적이고 체 계적인 이해를 위해 지도 판각과 지리지의 편찬에 매진한 사람으로 인정 받아 마땅하다.

김정호는 국토정보를 효율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지도와 지리지를 동시에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청구도범례 등 여러 곳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도의 제작과 지리지의 편찬에서 정확성에도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용의 편리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김정호의 업적을 살펴보면 이렇다.

1853~1856년 대축척 고을 지도를 생략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여도비지’ 20책을 최성환과 함께 편찬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기본 정보가 ‘청구도’와 상당히 달라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의 대동여지도 18첩을 제작하였다. 1856~1859년 사이에는 기본 내용을 완전히 개정 한 필사본의 동여도 23첩을, 1861년에 목판본의 대동여지도 22첩을 제작하였다.

1864년에 목판본의 대동여지도 22첩을 교정하여 재간하였으며, 1861년부터 1866년경까지 대동지지 32권 15책을 편찬하다 미완으로 남겼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청구도’에 수록된 최한기의 청구 도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수록된 ‘만국 경위 지구도 변증설’과 ‘지지 변증설’, 신헌의 ‘금당초고’에 수록된 ‘대동방여도서’, 유재건의 ‘이향 견문록’에 수록된 ‘김 고산 정호’에 불과하다.

기록을 모두 합해도 현재의 A4 용지 한 장 안팎밖에 되지 않는 아주 적은 양이다. 이에 따라 김정호가 황해도 토산 출신이라든지, 도성 숭례문 밖의 만리재나 약현 부근에 살았다는 등의 일설이 전해지고 있다. 출생과 사망연대, 본관, 신분, 고향, 주요 주거지, 가계 등에 대해 어느 것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의 작품 대다수가 현재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렇게까지 기록이 없는 것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족보가 발달한 조선에서 가계 기록조차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그의 신분이 지체 높은 양반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분이 높지 않은 사람 중출 중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기록한 유재건의 ‘이향 견문록’에 김정호의 전기가 실렸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지구 전후도’, ‘수전 전도’, 목판본의 ‘대동여지도’, ‘대동여지전도’에서 확인되듯이 판각에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평민의 장인 출신이라 볼 수 있다.

황해도 초산에서 태어난 평민 출신 김정호는 지리 인식과 탐구 정신, 그리고 지리편집과 판각에 뛰어난 감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대동여지도’는 1만9140개의 지명 중에서 7000개를 빼고 1만1760개만 새겼다. 대량으 로 인쇄하고 모사 과정에서 오류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지리 인식에 어려움이 있다.

1769년경 조선 영조의 명을 받아 편찬된 우리 전통 지리서인 ‘산경표’와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는 지리 인식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속 산과 산줄기가 족보형식으로 기술된 ‘산경표’가 더 대접받는다.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어독본’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는 김정호가 전국을 몇 번이나 순회하고, 백두산을 열 번이나 올랐다고 미화시키고 있다.

국가기밀사항인 우리나라 지도를 유출해 조정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혀 옥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옥사하지도 않았고 편안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 조선 시대 평민들은 양반들과 비교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점을 이용해서 일제가 왜곡시킨 것이다. ‘산경표’ 대신 지리 인식에 난해한 ‘대동여지도’와 고산자를 미화시켰다.

어쨌거나 고산자 김정호는 각 고을에서 그려온 지형을 토대로 탐구하고 문헌을 집대성해서 목판본에 새긴 공로자임이 틀림없다. 그는 지도편집과 우리 국토를 목판에 판각했던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진정한 장인이었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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