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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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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미래
  • 전민일보
  • 승인 2023.11.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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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의 ‘거협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음률을 어지럽히고, 악기를 태워 없애고, 사광(師珖)의 귀를 막아야 비로소 천하 사람들의 귀가 밝아질 것이다. 무늬를 없애고, 다섯 색깔을 흩어버리고, 이주(離朱)의 눈을 붙여놓아야 비로소 천하 사람들이 밝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고리와 줄을 부수고, 척도(規矩)를 버리고, 공수(工垂)의 손가락을 비틀어버려야 비로소 천하 사람들이 교묘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대교약졸(大巧若拙)’을 강조하였다. 즉,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이번 한 해에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접점이 많았다. 하나하나 열거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그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예술교육이 아닌, 예능(藝能)교육에 가까운 현실이었다. 예능이란 ‘재주와 기능’이다. 즉, 기예(技藝)의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장르 예술의 경우 글을 쓰는 말장난의 방법, 그림을 그리는 붓질의 요령, 악기를 틀리게 연주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기예에 치중한 예능교육의 예시가 될 것이다.

최신 트랜드를 반영한 문화예술교육도 크게 다르진 않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상촬영교육은 정말로 스마트폰의 기능과 애플리케이션 활용법을 익히는 것에 치중한다. 또한 캘리그라피 교육의 커리큘럼 구성은 글자의 조합과 강약, 줄맞추기와 배열, 둥글고 각진 형태의 서체 연습 등 기술적 측면으로 채워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How)’에 관해서는 열심히 가르치지만 ‘무엇(What)’을 표현해야 하고, 그것을 ‘왜(Why)’표현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걸까? 그것을 설명하려면 예술에 대한 논의를 전제(前提)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양철학에서 예술은 ‘조화(調和)’로 설명된다. 공자의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는 ‘현가지성(弦歌之聲)’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현악기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지만, 그 내용전체를 살피면 예악(禮樂)으로 민심을 선도했기에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같아지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치를 내포한 단어이다.

서양철학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사람의 행위를 모방하는 비극(悲劇)을 설명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카타르시스(Catharsis)를 통해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직접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대상으로 예술을 설명했다.

물론 이 두 가지 논의만으로 예술을 정의(定義)할 수는 없다. 다만,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가치와 연결되며, 이를 통해 보편성과 공감에 대한 지향성을 가진다고 논해볼 수는 있겠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의 전제조건은 ‘모든 사람에게는 보편적이고 잠재적인 창의력이 있다는 인식의 공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 또한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누구나 삶을 영위하고 개선하기 위해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으며, 그러한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는 가치는 개인의 ‘성취’, ‘혁신’, ‘자유’ 등 이라고 캐스린 도슨(Kathryn Dawson)은 설명했다.

즉, 문화예술교육은 ‘무엇(What)’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의 발견이고,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비로소 ‘왜냐하면(Because)’으로 답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이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은 참여자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때 장르는 매개이자 촉진의 도구이다. 그 자체는 목표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시민 하나하나가 기예(技藝)를 익힌다고 해서, 문화예술교육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문화예술분야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더구나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산은 무려 54%가 삭감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저평가한 까닭일까?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의 악명(樂名)은‘균화(鈞和)’다. “만민(萬民)을 교화(敎化)하고, 천지(天地)와 더불어 화함(和含)”하도록 예악을 장려한 세종의 공업(功業)이 고스란히 담긴 명칭이다.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이와 같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의 공업(功業)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전승훈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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