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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독립운동가 윤기섭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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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독립운동가 윤기섭선생
  • 전민일보
  • 승인 2009.04.0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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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비밀결사단체 신민회와 신민회의 청년운동단체 청년학우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기섭(尹琦燮, 1887.4.4-1959.2.27)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1887년 4월 4일 조선말의 명문가인 해평 윤씨 집안에서 유학자 기영(耆榮)과 합천이씨 사이의 2남 3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강원도 철원의 문장가 박초양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서울 보성학교에 제1회로 입학하여 1909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교육에 종사했으며, 이 무렵 선생은 신민회에도 가입하여 자주독립, 민중계몽, 민권신장 등의 민족운동에도 투신하였으며 신민회 산하의 ‘청년학우회’에서도 활동했다.
  ‘안명근사건’과 뒤이어 터진 ‘105인사건’으로 이승훈 등이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오산학교의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은 선생으로 하여금 망명을 서두르게 했다. 1910년 ‘경술국치’에 닥쳐 국외 망명을 결심하고 1911년 8월 서간도로 망명,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함께 한인자치기관 ‘경학사’를 설립하고, 산하에 무관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창립하는데 참여하여 10년 동안 신흥무관학교의 학감 및 교장으로 역임하면서 수많은 군사인재들을 양성했다.
 1920년 2월 9일 3.1운동 이후 왕성해진 독립 열기를 독립전쟁으로 수렴하기 위한 서간도 삼원포에서의 임시국민대회에서 임시회장에 선출된 선생은 독립전쟁을 호소하고 임시정부에 대해 독립전쟁을 위한 재정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서간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서간도를 떠나 2월 말경 상해에 도착했다. 1920년 2월 말 임시의정원 서간도 의원으로 상해에 도착한 선생은 안창호를 방문하고 서간도의 전반적인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3월초 선생은 정식으로 임시의정원에 등단하여 ‘군사에 관한 건의안’을 제출하고 임시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1921년 4월에는 임시정부를 해체하자는 논의가 제기되자 선생은 조완구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고 이끌었다. 1922년 10월에는 임시정부의 장기적인 대일전쟁 준비를 위한 ‘한국노병회’ 창설에도 참여하였으며 오늘날 입법부인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선생은 상해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전쟁 뿐만 아니라 외교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21년 11월, 태평양회의에 참석하는 각국의 대표들에게 임시의정원 의원 25명과 연서로 독립청원서를 발송했다. 선생의 의정활동은 1920년부터 1935년까지 임시정부 국무원 및 군무장 등으로 활약하는 한편 독립운동 정당 통합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1935년 남경에서 민족명당 창당의 결실을 맺고 당보부 책임자로 활동했다.
 선생은 1933년 3월 22일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장에 선임되었으며 그리고 다음해까지 항주에서 열리고 있던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회의 및 임시의정원 회의에도 계속하여 참여하였으며 1932년 10월에는 상해에서 결성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에서 관내지역 각세력의 통합논의를 거쳐 마침내 1935년 남경에서 단일대당 민족혁명당이 창당되었다. 선생은 김원봉 등과 협력하여 민족혁명당을 조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민족혁명당은 드디어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1907년 신민회 활동 이후 항일운동에 투신한지 40년이 다되어가는 선생이  일제 패망 소식을 들은 것은 중경에서였다.
 선생은 생활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교민들의 귀국을 위한 일들을 처리한 후 1946년 4월말이 되어서야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 환국 후 선생은 민주주의민족전선, 민족혁명당, 민족자주연맹 등에서 활동했다.
 1950년 5월 30일 선생은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며칠 후 발발한 6.25전쟁으로 다른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납북됐으며, 1959년 2월 27일 향년 73세로 북한에서 서거했다. 1989년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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