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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부자’ 될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 될 것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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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부자’ 될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 될 것을 가르쳐야 한다
  • 전민일보
  • 승인 2015.09.1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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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선 이리백제초 교사

 
십 여 년 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촌여동생이 대기업 노동자로 취직했다며 자랑을 했더랬다. 고졸인데도 월급도 많이 주고 전원 기숙사생활을 해서 돈도 모을 수 있다며 달뜬 목소리로 입사하더니 몇 년 있다가 그만두고 나왔다. 왜 좋다던 직장을 그만 뒀느냐 물으니 “이건 사람 살 곳이 아니더라구요. 간부들의 비인간적 대우에 주야교대를 하면서 잠잘 시간도 부족하고 특근에 야근에 아파도 쉬지 못하고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서 빨리 그만 뒀어요.”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에서는 대기업반도체 공장의 실태와 피해사례, 대기업의 노예노동 강요와 작업장 안전에 대한 무관심, 산업재해 노동자에 대한 협박과 회유, 기업의 책임회피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실화에 기반 한 것으로 줄거리 대부분이 사실이라고 밝힌다는 점이다.

지난 며칠 간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교육관련 논쟁의 주요 당사자가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글의 주요 내용은 “메르스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와 삼성서울병원, 삼성은 ‘드림클래스’와 같은 사업뿐만이 아니라 삼성 때문에 평생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분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도 함께 하라. 전북교육청은 약 3년 전부터 관내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에 전북 지역의 학생들을 취직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해 놓았다. 삼성이 성실한 납세, 투명한 기업회계질서 확립, 편법 상속과 증여의 관행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로 끝을 맺고 있다.

이러자 소위 진보교육감이라는 사람들의 작은 꼬투리를 침소봉대하며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던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신이 났다. 그렇잖아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저절로 먹잇감이 굴러들어온 셈이 되어 버렸다. 신문에 낸 제목들을 살펴보면 “김승환 교육감, 소신 아닌 똥고집으로 학생들 교육·취업기회 막아, 전북 교육감 삼성전자 취직시키지 말라 논란, 저소득층 학생 공부 기회 뺏은 김승환 전북교육감에 뿔난 네티즌들, 직업·교육 선택기회 침해, 전북교육감 비난 쇄도” 등에 더해 심지어 조선일보는 “김승환 전북교육감, 그는 누구인가?”라며 그동안 벼려왔던 칼을 휘둘러댄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이런 류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옳은 말 했네, 노동자의 안전 보장이 안 된 회사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국 같으면 저런 회사 자체가 있을 수 없다. 한국에서 삼성에 대 놓고 싫은 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삼성전자 무서운 직업병 걱정이 된다. 내 딸이라도 삼성전자에는 절대 보내지 않는다.” 등 오히려 김승환 전북교육감을 옹호하는 댓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찬찬히 살펴보자.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다 독해력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글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거나 배경을 보지 않고 자극적인 몇 개의 단어나 문장을 따다가 자기 입맛에 맞도록 가공하는 것은, 기자들을 기레기라 부르기에 충분하고 보수신문을 수꼴의 첨병이라 칭하기에 아주 적당한 사례들이다.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삼성이 아니라 천하의 초일류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학생의 건강에 유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걱정하고 피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겠는가? 또 부도덕한 기업에서 적선하듯 제공하는 사교육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교육청은 “그래도 공짜니까” 하면서 덥석 받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공교육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 학생들을 민주적인 공화국의 시민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는 것이고, 어른들은 좀 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가야 한다.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걱정하고 학생들을 채용하게 될 기업에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부자’ 됨이 아니라, ‘사람’ 됨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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