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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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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일보
  • 승인 2015.07.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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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하루 세 끼 밥을 먹을 때마다 젓가락질이 서투르거나 숟가락질을 잘못하여 밥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이 때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실수하여 식탁이나 밥상에 떨어뜨린 밥을 지저분하다고 여기고 버린다. 쌀이 귀했던 가난한 시절에는 쌀 한 톨이나 밥알 한 개를 아주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다.

유년시절에 보릿고개를 경험한 터라 밥알 한 개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것이 몸에 배었다. 식탁이나 밥상에 떨어진 밥알 한 개를 외면하면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그러나 밥알이 되기까지 수고한 손길을 생각하고 애정을 가지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몸이 될 수 있다.

“상에 떨어진 밥알 한 개/ 고개 돌려 모른 체하면/ 식는 순간 쓰레기 되지만/ 손길 부드럽게 내밀면/ 온기 몸에 돌아 피 된다”(졸시: 외면 일부)

풀잎에 매달린 아침 이슬은 참 맑고 투명하다. 이른 아침 산책을 할 때 풀숲에 있는 풀잎마다 이슬을 매달고 있다. 이런 이슬을 모른 체하고 지나치면 단순하고 작은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청아한 물꽃이 되고 시가 된다.

“ 새벽 산책길에 보고 왔다/ 떡갈나무 새에 새들어 사는/ 이슬의 방, 그 안에/ 꼭두서니빛 아침노을이/창마다 환하게 걸어둔 눈물 꽃 몇 송이”

‘김경윤’은 <이슬의 방>이라는 시에서 이슬을 “눈물 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먹구름 너머에 대해서/ 이슬의 지문을 조회하면 누군가가/ 내 기억의 언저리에서 동그랗게 손 모으고 있다/ 순장한 나의 아틀란티스 엿보려/ 저 투명하고 둥근 신의 렌즈로 날 길어 올리고 있다”.

‘한석호’는 <이슬의 지문>에서 이슬을 “투명하고 둥근 신의 렌즈”라고 하였다.

가을이 끝자락에 이르면 나무는 자신이 갖고 있던 잎을 거의 다 내려놓는다. 낙엽을 모른 척 외면하면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다정하게 손길을 내밀면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 주고 싶습니다”.

‘안도현’은 <가을엽서>에서 낙엽을 통해 베풂의 덕을 유추하고 있다.

“한 가지에서 나서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 몸으로 포개져 있다”

‘이재무’는 <낙엽>이라는 시를 통해 바삐 사는 현대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너무 바삐 사느라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 초상난 집 문상 가서나 서로 볼 수 있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사소한 밥 알 한 개,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 떨어진 낙엽 한 장도 우리가 외면하면 버려야 할 쓰레기에 불과하다. 더욱이 사람은 어떠랴.

우리 사회에는 여러 이유로 고통 받고 버림받은 사람이 많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 냉대 받는 어르신,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장애우,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경제적 빈곤자, 부모한테 버림받은 어린이, 거리를 방 삼고 사는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우리가 따스하게 눈길을 보내고 품어야 할 고귀한 생명이다.

어떤 생명이든 우리가 고개 돌려 모른 척 하면 살아 있어도 숨 쉬는 게 아니다.

외면은 곧 무관심이다. 사랑과 반대되는 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자신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즉 상생이나 공생이 아니라 상멸과공멸이다. 어떤 생명이든 외면하는 순간 쓰레기처럼 버림받고 무관심해지는 순간 죽어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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