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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혜안(慧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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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혜안(慧眼)
  • 전민일보
  • 승인 2014.11.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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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칼럼니스트

 
문묘(文廟)와 종묘(宗廟). 성리학(性理學)이 지도이념인 조선에서 이 두 곳은 성역이다. 그래서 그곳에 배향(配享)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개인과 가문의 영광으로 얘기한다.

그 중에서도 종묘에 배향된 공신에게선 묘정의 주인인 왕과의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세조(世祖) 묘정에 배향된 인물을 살펴보자. 주인공 3인은 한명회(韓明澮)와 권람(權擥) 그리고 한확(韓確)이다.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관련 해 흥미로운 왕이 있다.

재위기간 넘치는 인재와 문화창달로 목릉성세(穆陵盛世)라는 찬사를 받은 선조(宣祖)다. 실제 선조의 종묘배향공신은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다른 모든 인물들의 무게감을 능가한다. 주인공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율곡(栗谷) 이이(李珥) 그리고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이다.

퇴계와 율곡은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이기도 하다. 그럼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동고는 어떤 인물일까. 선조와 이준경의 관계는 성종(成宗)과 신숙주(申叔舟)의 그것과 유사하다. 신숙주와 이준경 둘 모두 원로로서 어린 임금에게 유소(遺疏)를 남긴다.

이준경은 죽음이 다가오자 의원을 물리치며 이렇게 말한다. “나의 수명이 이미 다하였다. 어찌 약을 먹어 목숨을 연장할 수 있겠는가. 오직 우리 임금에게 한 말씀 올리고 싶을 뿐이다.”

그는 선조에게 4건의 일을 당부한다. 학문수양, 아랫사람을 대할 때 지녀야 할 군주의 위의(威儀), 군자와 소인을 분간하는 안목 그리고 마지막으로 붕당(朋黨)에 대한 경고다. 인상적인 것은 유소의 마지막 대목이다. 실록(實錄)에 기록된 내용이다.

“넷째, 사사로운 붕당을 깨뜨려야 합니다. 신이 보건대, 오늘날 사람들은 간혹 잘못된 행실이나 법에 어긋난 일이 없는 사람이 있더라도 말 한 마디가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배척하여 용납하지 않으며, 행검을 유의하지 않고 독서를 힘쓰지 않더라도 고담대언(高談大言)으로 붕당을 맺는 자에 대해서는 고상한 풍치로 여겨 마침내 허위 풍조를 빚어내고 말았습니다. 군자는 모두 조정에서 집정(執政)하게 하여 의심하지 말고 소인은 방치하여 자기들끼리 어울리게 해야 하니, 지금은 곧 전하께서 공정하게 듣고 두루 살펴 힘써 이 폐단을 없앨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는 반드시 국가의 구제하기 어려운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후 진행된 역사를 보면 이준경의 혜안(慧眼)이 놀랍다. 불행히도 이준경의 경고는 현실화한다. 그런데도 당시 선조를 비롯한 조정 신료들은 이준경의 문제제기에 시큰둥했다.

선조 5년(1572) 7월 1일자 실록에 나오는 장면이다. “상이 이준경의 유소에 ‘조정 신하들이 붕당을 만들어 마침내 허위 풍조가 형성되었다.’고 한 말을 보고 크게 놀라 대신에게 묻기를, ‘만약 붕당이 있다면 조정이 어지러워질 것이다.’하니, 대신이 그 의혹을 풀어주었는데, 상도 끝까지 따지지 않았다. 그러자 삼사(三司)와 예문관(藝文館)·독서당(讀書堂)이 다 상소하여 그 실언(失言)을 공박하였다.”

실록을 보면, 이준경의 유소에 대한 왕과 신료의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율곡(栗谷) 마저도 상소문을 통해 이준경을 비판한다. “준경의 말은 울분에 격앙되어서 나온 것이거나 아니면 정신이 착란된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불충(不忠)이 될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큰 화를 부추기는 근원이 된다 하겠습니다.”

정말 율곡이 이런 말을 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는가. 그래서 이준경의 유소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듣기 싫어하는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나라의 복이다. 그래서 역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준경이야말로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붕당의 폐해를 정확히 경고한 시대의 선각자라고.

퇴계, 율곡과 더불어 선조 묘정에 배향될 만한 그릇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오늘 한국 지도자에게는 어떤 혜안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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