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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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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의 유래]
  • 고운영
  • 승인 2014.02.04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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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사랑이야기가 흘러가는 목천포(木川浦)

‘옛날 만경강에서 뱃사공을 하는 목천(木川)이라는 총각이 있었다. 사공일로 노부모를 공양하던 목천은 못생긴데다 가정 형편도 넉넉지 못해 장가를 가지 못하고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

다.
그러던 어느 날, 해질 무렵 아리따운 처자 하나가 배에 올랐고 목천은 그 처녀의 미모에 넋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 건너에 배를 대자 그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목천은 처녀가 다시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고 급기야 목천은 상사병에 들고 말았다.
이런 목천을 본 노부모가 인근을 수소문해 본 결과 오산에 사는 최부자 댁의 딸이 그날 죽었다는 것과 그 처녀가 목천이 본 처자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이 소식을 들은 목천은 결국 병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고 그 후 사람들은 그가 노를 젓던 포구를 목천(木川)의 포구(浦口)로 불렀다고 한다’
목천포(木川浦)에 얽힌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사실 목천포의 어원은 따로 있다. 이곳은 옛 옥야현의 남쪽에 위치한 내(川)라 해 ‘남의 내’라고 불렸다. ‘남의 내’가 ‘나무내’로 발음되며 이를 한자화 해 목천(木川)이 되었고

배가 드는 포구였으므로 목천포(木川浦)라고 불린 것이다.
고잔(古棧) 마을은 본래 백구면 삼정리에 속해있다 1973년 행정구역 조정을 통해 목천동으로 편입되었다. 고잔은 사방이 강으로 둘러져 있어 잔교를 놓고 건너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도 있고, 곶(串) 안쪽의 마을이라는 뜻의 ‘고지안’을 줄여 불렀다고도 한다.
또 만경강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마을들이 있다. 이들 마을은 일동척, 삼동척, 사동척, 육동척으로 불리다가 1973년에서야 일동척은 신광리(新光里), 삼동척

은 부농리(富農里), 사동척은 화정리(花亭里), 육동척은 유신리(維新里)라 고쳐 불렀다.
한편 평화동에도 이 지역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지명이 남아 있다. 평화동 서쪽 끝 지역은 무네미(무넘이)라 불린다.
과거 만경강 제방이 없던 시절 만조시에 바닷물이 이곳까지 밀려들어왔기 때문에 물 너머에 있는 마을을 무네미라 불렀다.
해방 전후 이곳에서 생산된 무네미 미나리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며 재배면적도 단지화되고 많은 양이 서울 등지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만경강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평화동과 목천동은 드넓은 평야를 키우며 흐르는 만경강을 닮아 있다.   익산=고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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