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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편 어려운 학생들 위해 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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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편 어려운 학생들 위해 써달라”
  • 김병진
  • 승인 2014.01.2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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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삶 살아온 아흔다섯 조금임 할머니의 소중한 기부

역사의 질곡을 짊어지며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온 아흔 할머니가 평생 동안 아껴 모은 재산을 기부해 감동을 주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북본부는 20일 조금임 할머니(95)가 (재)여산장학회(이사장 국중하)를 통해 지금껏 모은 재산 2억원을 기탁해 왔다고 밝혔다.


군산 출신인 조 할머니는 군산보통학교(현 군산중앙초교)를 졸업한 뒤 일본 나가사키 도기 야마 마찌(NAGASAKI DOKI YAMA MAJI) 조산간호전문대를 수료했다.

 

간호사가 되어 귀국했지만 전쟁의 소용돌이는 할머니도 피해갈 수 없었다. 31살 꽃다운 처녀였던 할머니는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간호장교로 전쟁에 참가했다. 이후 환자를 싣고 가던 차량이 전복되면서 척추장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휠체어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몸 이었지만 할머니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이후 조 할머니는 ‘애국하는 방법이 전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는 신념으로 수십 년간 서울의 재활용사촌에서 운영하는 군용양말 공장에서 일했다.


특히 할머니는 재활 치료를 위해 배웠던 운동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967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 탁구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또 쉰 다섯의 적지 않은 나이에 197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제4회 장애인 올림픽 양궁부문에 도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조 할머니는 ‘국내최초 여성장애인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지금까지 장애인 스포츠에 도전하는 여성장애인의 꿈과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할머니는 지금껏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면서 근검절약을 생활의 기조로 살아오신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는 지난 2001년 80의 나이에 국제대회 우승상금을 포함해 평생 양말공장에서 일하며 모은 2억원의 전 재산을 기부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또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장학재단에도 자신의 이름을 절대 사용하지 못하도록 당부했다.


조금임 할머니의 조카사위인 국중하 여산장학회 이사장은 “본인께서는 자신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만류하셨지만 사회의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선행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 분의 아름다운 뜻에 따라 지역 인재를 육성하는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어린이재단과 여산장학회는 할머니의 기부금 중 1억9500만원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정해 대학등록금을 지원하고, 500만원은 빈곤가정 아동 중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의 교복 구입비로 쓸 예정이다.
김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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