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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역사잔재 .."지속적 청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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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역사잔재 .."지속적 청산해야"
  • 김병진
  • 승인 2014.01.1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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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다음주 철거되는 다가공원 신사 돌기둥 가보니

완산 32경중 하나인 다가비설(多佳飛雪). 다가산에 휘날리는 눈보라의 모습이다. 14일 오전 찾은 다가산 정상(216m)에 눈은 날리지 않지만 매서운 겨울 바람에 코끝이 빨개졌다.


정상에 도착하자 거대한 석조 구조물인 호국영렬탑이 눈에 들어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1957년에 지어졌고, 이후 2003년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하지만 탑 바로 앞에 2m 남짓한 돌기둥이 눈에 거슬렸다. 주변 산책 하는 주민들에게 물어 봐도 돌기둥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돌기둥은 마치 거대 사찰의 당간지주처럼 옆면에 2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를 통해 없어진 또 하나의 석조물과 함께 커다란 봉을 세웠을 지주석으로 추정됐다. 뒷면에는 누군가에 의해 정으로 쪼아진 흔적이 있었다. 일본천황의 연호를 쪼아낸 것으로 보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지부장은 “다가산 정상은 일제침략기 전주신사가 있었던 곳으로 돌기둥은 신사의 지주석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석조물의 상단모양에 사각의 뿔각 형태는 우리나라 석조물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일본의 석조물에 나타나는 것들이다”고 밝혔다.


다가산은 씁쓸하고 암울한 치욕의 역사를 안고 있다. 민족문제 연구소 등에 따르면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후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神社)’를 곳곳에 만들고 ‘신사참배’를 강화했다. ‘신사(神社)’란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전주에 신사(神社)가 세워진 것은 언제일까. 1943년 일본어로 쓰인 ‘전주부사(全州府史)’ 기록에선 지난 1914년 10월 다가산 정상에는 신사와 사무소가 차려지고, 다가산 밑 광장(현재 천양정 앞)에는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웅장한 석조 도리이(신사 입구에 세운 문)가 세워졌다.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류로 1937년 신흥학교와 기전학교가 임시 폐교되는 아픔도 겪었다.


최근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학계 등을 중심으로 일제 잔재물인 신사의 돌기둥을 즉각 철거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결국 전주시 완산구청은 지난해 말 역사 바로 새우기 일환으로 다가공원 신사 돌기둥 철거를 결정했다. 구청은 100만원 남짓한 예산을 들여 다음주 초 현 위치에서 전주역사박물관으로 옮길 예정이다.


김 지부장은 “시민의식이 성숙해 가고 있다는 점에 반갑다”며 “다만 아직도 전북에는 적지 않은 친일잔재(기린봉 이두황묘, 전봉준 생가 앞 교각의 욱일승천기 모양)가 남아있어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 청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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