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을 몰래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나 주위를 훈훈케 하고 있다.
28일 오전 11시55분께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임박했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찾아왔던 얼굴 없는 천사의 전화가 아직 안 왔기 때문이다.
혹시나 올해는 오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빠짐없이 얼굴 없는 천사가 찾아왔었기에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 주민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해마다 성의표시를 하는 게 있는데 센터 건너편에 있는 미용실 옆 골목길 화단에 가보면 A4용지 상자가 있느니 확인해보라"는 천사의 목소리였다.
얼굴 없는 천사의 전화를 받은 직원 심야은씨(27.여)는 "천사의 전화가 왔어요"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음 뛰쳐나갔고, 직원들은 서둘러 쫒아 갔다.
하지만 얼굴 없는 천사의 기척은 볼 수 없었고, 미용실 공터 화분 위에는 A4용지 박스만이 놓여 있었다.
박스 안에는 노란 돼지저금통과 고무줄로 단단히 묶인 현금뭉치가 들어있었다.
이날 얼굴 없는 천사가 기부한 금액은 총 3584만900원.
5만원권 100매씩 돌돌 말아 고무줄로 묶은 3500만원과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500원짜리와 100원, 10원짜리 동전 34만원 등 이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0년 4월.
천사는 중노2동주민센터(당시 동사무소)에 58만4000원이 든 돼지 저금통을 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11년 동안 선행을 지속해왔고,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 천사가 기부한 금액만 해도 올해까지 1억9720만4020원에 달했다.
그가 전달한 돈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모르기 때문에 ‘얼굴 없는 천사’를 궁금해 하는 취재진과 시민들에게 극구 알려지기 싫어해 수표는 절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5만원짜리 고액권 묶음도 있지만, 10원·50원·100원·500원짜리 동전이 든 돼지저금통도 함께 있었다.
이는 물건을 살 때나 점심을 먹을 때 등 아끼고 아껴 모았던 점을 알려주는 흔적으로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과거 9년간의 성금액(8100여만원)과 맞먹는 8026만5920원을 한꺼번에 내놓고,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 졌으면 합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쪽지까지 남기기도 해 주위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애잔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일수 노송동장은 "그의 선행이 시민 모두에게 희망과 사랑의 온정을 전하는 일이기에 올해도 꼭 올 것이라고 믿었다"며 "시민을 대신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귀중한 성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이석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