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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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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에 가면
  • 전민일보
  • 승인 2023.04.0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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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 경험이다. 내가 해외에서 처음 중국인과 교류(?)한 것은 1991년의 마지막 날 로마의 유스호스텔에서였다. 지정된 침대 자리를 놓고 말을 나누게 된 그는 스위스에서 유학중이라고 했다. 그를 통해 북한 유학생들 소식도 듣게 되었다. 나보다 연배가 10년 이상 더 되었던 그는 예의를 알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43일간의 유럽 여정에서 그는 화교나 대만, 홍콩인을 제외하고 내가 마주한 유일한 중국인이었다.

그 후 어느 순간 세계 도처에 중국인이 넘쳐난다. 노골적인 중화주의로 우월감을 표현하던 필리핀 화교, 블라디보스톡 독수리 전망대를 뒤덮은 오성홍기와 울분에 찬 고성(高聲)의 중국인들. 그것은 1990년대 중국 동북3성을 방문한 한국인 모습을 닮았다. 자신들 땅에서 태극기를 펼치고 고토회복을 외치던 한국인을 바라보던 중국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영화 <장진호>를 보면서 기립해 당시 중공군을 향해 경례를 하는 중국인 모습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인과 양립할 수 없는 일면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중국이 파로호(破虜湖) 개명까지 요구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사실 6·25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은 결코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통해 실전경험이 풍부한 중공군은 세계 최강 미군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런 중공군에게 한국군은 좋은 먹이였다.

파로호 전투의 출발도 그런 중공군의 인식에 따른 국군에 대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중공군 기대와는 달리 국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더 이상의 남진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파로호는 그런 대첩(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명명했다.

파로호와 장진호, 두 호수를 바라보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의식은 합일점을 찾기 어렵다.

여기에 정의(正義)는 없다. 서로의 입장이 있을 뿐.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공적 죽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에도 있다.

선조(宣祖) 37년(1604년) 10월 29일 왕은 이렇게 명령한다.

“이순신·권율·원균을 책훈(策勳)하여 1등에 봉하고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 관작과 품계를 세 자급(資級) 초천(超遷)한다.”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 조선 수군 전력을 궤멸시킨 칠천량 해전의 책임자인 원균은 어떻게 임진왜란 극복의 1등 공신이 된 것일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순신을 파직하고 그 자리에 원균을 임명했던 순간 조선 수군의 비극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선조는 원균을 옹호하고 이순신을 폄하함으로써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위신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선조 36년(1603년) 6월 26일 왕은 원균의 등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원균을 2등에 녹공해 놓았다마는 적변이 발생했던 초기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해 주기를 청했던 것이지 이순신이 자진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왜적을 토벌할 적에 원균이 죽기로 결심하고서 매양 선봉이 되어 먼저 올라가 용맹을 떨쳤다. 승전하고 노획한 공이 이순신과 같았는데 그 노획한 적괴(賊魁)와 누선(樓船)을 도리어 이순신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순신을 대신하여 통제사가 되어서는 원균이 재삼 장계를 올려 부산 앞바다에 들어가 토벌할 수 없는 상황을 극력 진달했으나 비변사가 독촉하고 원수가 윽박지르자 원균은 반드시 패전할 것을 환히 알면서도 진(鎭)을 떠나 왜적을 공격하다가 드디어 전군이 패배하게 되자 그는 순국하고 말았다. 원균은 용기만 삼군에서 으뜸이었던 것이 아니라 지혜도 또한 지극했던 것이다.”

선조의 말대로라면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 책임이 없다. 결국 원균을 통제사로 임명하고 이길 수 없는 전투를 강요한 자신의 책임도 없음은 물론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이순신을 파직한 것도 정당했음을 우회적으로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료(史料)는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파로호 전투에 대한 중국 측 기록을 보면 그들이 대패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역사는 입장 넘어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혜안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언젠가 장진호에 가고 싶다. 미군과 중공군이 싸운 호수가 아닌 우리의 아름다운 호수에.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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