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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진정한 어머니, 세상과 작별을 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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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진정한 어머니, 세상과 작별을 고하다
  • 서승희
  • 승인 2008.07.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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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숙 명창 별세

  “이제는 고향땅에서 후학을 길러내는 일이 가장 큰 임무입니다. 생존에 동초선생님이 저에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저도 제소리를 저의 후학들에게 이어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소원은 저를 이겨먹는 소리꾼이 나와 더욱 동초제를 부흥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듯, 자신을 능가할 소리꾼이 탄생시키는데 겁을 내기보단 판소리의 훗날을 위해 기량을 아낌없이 쏟아내 제자들을 키우던 모습까지. 판소리 춘향가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귓가에 울려 퍼질듯 하지만 이제는 추억의 뒤안길에서 아름답던 그 소리를 기억해야만 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운초 오정숙(雲超 吳貞淑) 명창이 지난 7일 오후 10시 50분 전북 익산 원광대병원에서 심근경색으로 타계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오 명창의 빈소 역시 동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국악계와 예술계 인사들의 문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향년 73세, 여성명창으로는 최초로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로 구성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오 명창은 한 평생을 판소리 전승과 보급에 힘썼다.
 고인은 1935년 6월 21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전주태생인 부친 오삼룡 명창 밑에서 어려서부터 소리의 아름다움을 듣고 배우며 자랐다.
 판소리의 기초가 탄탄했던 오 명창은 총명함과 영특함이 남보다 뛰어나 14세 때부터 18세까지 우리 국악단 단원으로 수행했다.
 21세 때부터 창극활동을 그만두고 판소리학습과 공연에 주력했던 오 명창은 23세 상경해 김소희 명창에게 심청가 범피증류를 배웠고, 24세부터 은거하고 있다가 27세가 되던 해 동초 김연수선생의 전수생으로 발탁, 평생을 동초제와 함께 보냈다.
 스승인 고 김연수 선생이 펴낸 동초제 판소리는 동편제의 우람한 소리와 서편제의 아련한 소리를 뽑아 새롭게 만든 것.
 오 명창은 소리의 고장 전주에서 한국인의 영혼과 전라도의 짙은 정서를 판소리에 담아 승화시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972년부터 매년 판소리 한바탕씩 완창발표회를 가졌으며, 1977년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창극활동을 전념하던 고인은 전주대사습 1회 장원, 남도 판소리 명창부 1회 장원 등 각종 대회에서 인정한 판소리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살아생전 오 명창은 음악적 탯줄인 전라도 땅에서 소리세계를 잇는 것을 종교의 숭고한 사명처럼 느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평생을 혼인하지 않고 판소리에 헌신했던 고인은 (사)동초제 판소리 보존회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스승의 뜻을 이어 소리를 이어갈 후학들을 키우는 데 힘썼다.
 그렇게 키워낸 제자로는 이일주 명창을 비롯한 조소녀, 민소완, 방성춘, 은희진, 김성애 등 판소리계에 없어서는 안 될 보물들을 낳았다.
 고인의 발인은 한국국악협회 국악인장으로 오는 11일 동초 김연수 선생 선영 부근인 전남 고흥군 내흥면 금산리에서 있을 예정이다. 서승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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