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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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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풍경
  • 전민일보
  • 승인 2009.03.27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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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다가온 풋풋한 봄.
 갑자기 겨울에서 여름이 다가온 듯 훈풍 부는 토요일 오후.
 출퇴근하느라 느끼지 못한 봄의 풍경을 가슴에 담고자 시간을 쪼개어 전주 천으로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모처럼 반복되는 삶을 훌훌 날려버리고 가볍게 걷다보니 작은 청둥오리 두 마리가 물길 따라 자맥질하며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억새밭에서는 수많은 참새들이 숨바꼭질하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사뭇 정겹게 들립니다.
 참새들의 작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재미를 혼자만 느낄 수 있어 그냥 행복합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전주 천을 벗어나 경기전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내를 돌며 선인들의 음덕을 되새겨 보는 계기를 만들고, 뒤꼍에 고고하게 핀 청매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입니다.
 경기전에 다다르자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때껏 본 예전의 한산한 풍경이 아니었거든요.
 타지에서 구경 오신 방문객들이 꽤 많았습니다.
 전주라는 곳은 풍류가 살아 숨 쉬는 맛과 멋이 어우러진 예술의 고장이라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 셈입니다.
 마음의 풍요를 위한 나만의 공간인 양 느긋이 꽃도 보고 뜨락도 거닐면서 사색에 잠겨보려던 생각은 저 멀리 사라졌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길 준비를 하고 있는 빈 의자에 앉아 바람소리를 벗 삼아 시집을 읽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꽤 오랫동안 은행나무에 기대고 서서 맑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빙그레 미소를 자아냈습니다.
 그 후,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서걱거리는 대나무 숲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매화나무 곁으로 다가가 살포시 열린 꽃봉오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나직이 숨을 고르고 그윽한 매화 향을 맡으며 꽃이 망울 트는 날을 놓치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음에 마냥 행복해합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는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더군요.
 먼발치에서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낙낙함으로 여린 청매의 눈웃음치는 작은 몸짓과 이년 전, 동심원 원장님이 기증하신 홍매도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실없이 지는 꽃잎을 보면서 오롯이 떠오르는 그리움이 찰랑이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경기전에서 경내 뜨락을 거닐다가 천진스런 어린이들을 만났고, 옆 대나무 숲에서 빛바래지 않은 순수한 여고생들을 만났으며, 풍상의 아픔을 잘 견뎌낸 활짝 핀 매화를 만났고, 주변을 거닐다가 한옥마을 지도를 그리고자 동분서주하는 동료를 만나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더 어려운 게 인생이라 생각되는 요즘.
 은은한 매화 향기처럼 멀리 있어도 가까운 사람이 되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부지런히 행복을 지으며 살아가렵니다.

양봉선 / 아동문학가·전북아동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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