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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을 지키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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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을 지키는 나무
  • 전민일보
  • 승인 2022.10.28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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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집안에 있는 책장을 둘러보았다. 명작동화, 전래동화, 자연관찰, 역사 책등 많은 책들이 꽂혀있다. 그중 여러 나라 각 시대에 획을 그었던 위인들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유명인들의 일대기를 기록한 위인전이 제일 많았다.

30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위인전 시리즈를 접하게 되면서 많은 위인전을 읽게 됐다. ‘편안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는데, 많은 위인전을 읽어가면서 위인들의 삶이 마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청소년기를 지난 이후로 ‘꿈’이라는 단어가 두 번째 동사가 되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스스로 글자를 읽어갈 무렵에 자연스럽게 위인전을 선물하게 됐다. 시대의 고난과 개인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온 많은 위인들의 삶에 대한 자세와 가치관을 배워 익히고 꿈꾸며 뜻있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특별한 위인은 아니지만,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야기가 모여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기 때문에 이분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의미 있고 낡고 허물어진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는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중 유독 칼바람이 불던 작년 겨울, 필자에게 뜨거운 물음표를 던져 준 어느 한 어르신을 잊을 수가 없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믹스커피를 내어주며, 갈라지고 쉰 목소리로 덤덤하게 물어오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자네, 문중의 선산을 어떤 나무가 지키는 줄 아나? 구부러지고, 못생긴 나무가 지켜……. 곧고 보기 좋게 자란 나무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든…….’

어르신은 곧고 보기 좋게 자란 나무들은 베어져 그에 맞는 자신의 몫을 다하고, 구부러지고 못생긴 나무에 자신을 비유하며 그대로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음을 건넨 말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못생기고 구부러진 나무들이 남아 씨를 뿌리고 산을 번성케 하고 산을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쓸모가 없는 나무가 아니라 뿌리가 깊어 흔들리지 않는 나무임을 깨달을 순간 가슴 속 깊은 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에게‘위인’의 의미를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제시해 준 것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쓰러지지 않고 그 역할을 다해주는 것으로도 이미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위인임을 말이다.

이 하나의 질문이 성공만을 갈구하는 이 시대에 ‘위인’의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우리나라는 왜구의 침략, 식민지, 전쟁, 독재 등 많은 아픔들이 역사에 있었지만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대 그 자리를 오롯이 지켜낸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참으로 쓸모 있다는 뜻으로 ‘즉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단단히 서있던 오늘이 어제가 되고, 여전히 그 자리에 단단히 서있을 내일을 기대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인생임을 따뜻하게 가르칠 수 있는 다양한 시선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송선미 문화통신사 팀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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