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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만드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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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만드는 선거
  • 전민일보
  • 승인 2022.03.03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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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더 나가면 누군가 내게 의견을 묻는 것조차 두렵다. 선거 얘기다.

내가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의견을 표명하는 순간, 누군가와는 멀어져야하는 현실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불신과 미움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러한 현실을 맞닥뜨리면 우리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에게 공동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거의 독립운동을 하는 비장함으로 포장되는 것도 기이하지만 더욱 우려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 미움이다. 자신과 다른 선택이 전제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선거가 필요한 이유다. 모두가 동의하는 존재를 뽑는 요식행위라면 선거가 과연 왜 필요한가?

울음을 터뜨리는 우크라이나 할머니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러시아군이나 부상당한 러시아군을 치료해주는 우크라이나 의료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작은 희망을 본다.

적어도 ‘이 부당한 전쟁이 인간성 파멸에까지 이르지는 않겠구나.’라는 일말의 안도감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노파심이라 얘기한다. 그럼에도 무지한 내 소견을 밝힌다면 조선의 4색(노론, 소론, 남인, 북인)당파가 사대부(士大夫) 계층의 파벌이었다면 대한민국 현재 모습은 전 국민이 당파로 나뉜 모습이다. 모두가 정치평론가이고 우국지사이면서 심판관인 나라.

‘참여의 위기’를 떠올리는 것도 내 무지의 소산이라면 한결 평안할 일이다.

내부의 평가는 물론 외신에서도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 말한다. 그럼에도 각각의 지지층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어 보인다. 불편하고 불행한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도 정확히 그 진영의 크기에 비례해 나뉘어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와 지인은 물론 심지어 가족 간에도 극명한 갈등요인이 된다. 서로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난하지만 그 양 극단이 가지고 있는 허물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왜 참여하는 시민을 넘어서 모두가 혁명가를 지향하는가?

국가 중대사를 한 몸에 걸머진 혁명가의 모습을 온 국민이 따라해야한다면 이거야말로 비효율의 극치다. 더불어 그것은 곧 대의민주주의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음을 의미한다.

내 주위엔 선거에 대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신 수많은 지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여전히 내가 존경하고 신뢰하는 대상이다. 나는 그들이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존중할 뿐 아니라 내 판단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분들이 그런 생각으로 판단을 하셨다면 분명 합당한 이유와 내가 다 살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적잖은 사람들이 또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이민 가겠다.’

선거결과에 따라 매번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이 생기는 민주주의라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문제가 아니다. 감정의 과잉과 이성의 미비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장유(張維)의 시문집인 <계곡집(谿谷集), 간원의 차자(諫院箚子)>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만약 신하가 사심을 가졌다고 의심한 나머지 자신이 먼저 사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한다면, 이는 푯대를 바르게 세워서 그림자를 바르게 하는 도리가 못될 듯싶습니다. 이런 까닭에 미리부터 억측하여 불신하지 말라고 성인께서 깊이 경계하신 것이니, 어떤 사물이 나에게 오든 순리대로 응하는 것이야말로 대공(大公)을 행하는 도리가 된다고 할 것입니다.”

왕이 지배하던 시대의 논리이지만 현 한국사회 시민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얘기 아닌가?

내가 참여한 대통령 선거에서 내 선택과 대통령 당선자가 얼마나 일치했는지 헤아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것에 집착할 만큼 내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판단과 다른 국민의 선택이 존재해왔고 그것에 의해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선 내 선택과 국민의 그것이 일치할까? 조심스럽다. 내 선택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그에 대해 나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전한 내 노파심은 ‘원수를 만드는 선거가 두렵다.’는 것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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