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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의 늦가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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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의 늦가을 단상
  • 전민일보
  • 승인 2008.11.18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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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이면서 겨울로 들어서는 늦가을 이른 아침.
 올려다 본 쪽빛 하늘이 싱그럽게 보이자 괜스레 울컥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보니 문득 내장산이 그리워진다.  
 주말에 느긋하게 쉬려던 마음이 돌변한 나는 TV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애교를 부렸다.
 "여보! 소원이 있는데 들어 줘. 응?"
 "뭔데 호들갑이야?"
 남편의 퉁명스런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너스레를 떨었다.
 "있잖아. 늦가을의 내장산을 만끽하고 싶어."
 "에구! 오늘도 개띠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했군."
 "여보! 떠날 준비를 해도 괜찮겠지?"
 "알았어."
 철부지 아이처럼 막무가내로 우기면 못이긴 척 져주는 남편의 볼멘 소리였다.
 잽싸게 서둘러 내장산을 가는 도중 장승 축제가 열린 곳에 들렀다.
 갖가지 특성을 살려 기이하게 조각한 장승들을 하나씩 휘돌아 보는 동안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지워지지 않는 향수를 자아내며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무명인!
 팔랑거리며 뛰어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 나의 놀이터는 보물 제 308호로 지정되어 있는 풍남문이었다.
 60년 말에 어린 눈으로 바라본 풍남문은 어찌 그리 웅장해 보였던지…….
 풍남문 주변엔 말똥이 굴러다니고 지게꾼이 서성이며 오갈 데 없는 넝마주이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던 곳.
 그 당시, 그곳엔 때꼽재기가 뚝뚝 떨어질 정도의 중노인이 날마다 변함없는 자세로 목각 인형을 정성스레 다듬고 있었다.
 어느 날 숨바꼭질하다 싫증이 난 나는 호기심에 다가가 버려진 나무토막을 깔고 앉아 손동작 따라 변하는 조각품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해가 꼴깍 넘어가는 줄도 모른 채…….
 장승을 보면서 부모의 애간장을 태워 몹시 혼났던 그 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감미롭게 채색되는 순간이었다.
 사십여 년의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결코 퇴색되지 않은 기억을 되살리며 내장산을 향했다.
 권태로운 일상을 깨우는 불가사의한 힘을 얻고자 떠나온 우리.
 인산인해로 북적거리는 길을 피해 왼쪽으로 쭉 뻗은 능선을 따라 황톳길을 사붓사붓 걸어 오르다 무심코 올려다 본 산봉우리들은 형형색색의 빛깔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바람결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수수 떨어져 까만빛으로 갈무리하는 낙엽을 밟고 걸을 땐 저절로 사색에 잠겨 시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밀레의 아름다움은 알맞음이다 라는 말이 썩 잘 어울리는 단풍 숲을 남편과 함께 볼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
 집으로 되돌아 올 땐 아무리 갖고 싶어도 내 것일 수 없는 경이로운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 욕심과 집착의 옷을 벗어버리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잊지 못할 날이었다.

양봉선 전북아동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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