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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와 전북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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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와 전북 전성시대
  • 전민일보
  • 승인 2020.02.06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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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가 되어 권한이 정지되었을 때다. 국회 귀빈식당에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석한 가운데 주요정당 정책위의장과 의 간담회가 있었다.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장성원 의원실 인턴이었던 나도 수행했다.

그때 인상적인 정치인이 있었다. 정세균 의원이다. 통화를 하며 걸어오는 그를 본 당시 국방부 장관이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에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국의 국방 책임자가 민망할 정도로 과례(過禮)를 표하는 모습에 대한 불편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실세 정치인의 위용(?)이었다. 물론 정세균 의원에 대한 인상이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파를 달리하면서 좋았던 인간관계까지 멀어지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당시 장성원 의원과 정세균 의원도 정치적 입장이 달랐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장성원 의원실에 왔다.

담화를 나누고 그가 떠날 때 환한 웃음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이 분은 적어도 정치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구나’ 그것은 정치인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가 아닌 인간됨에 대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황폐화된 한국정치의 현실과 나누어진 국민의 마음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한 종편에서 전북일보를 인용해 현재 전북 인사들의 약진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봤다. 국회의장 출신의 총리를 비롯해 검찰 핵심 보직에도 전북 출신들이 다수 기용되었으니 그런 얘기들이 나올 만하다. 바야흐로 전북 전성시대인가.

호남, 내 기억 속 그 이름은 멍에이자 아픔이었다. 때로 그것은 빨갱이, 전라디언, 홍어 등 갖은 모욕과 배제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청주, 강릉, 수원, 여주는 물론 서울의 어느 달동네에서 내게 각인시킨 주홍글씨의 기억도 그렇다. 흔히 그것을 호남과 영남의 갈등으로 얘기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호남과 비호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남북 분단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의 아픈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적 분열은 정파와 계층, 연령과 성별에 이르기까지 극도의 증오를 낳고 있다.

현재 얘기되는 전북 전성시대의 모습이 거기에서 파생된 기형적 결과라면 그것은 전북을 위해서도 결코 웃을 수만은 없다.

지역 출신 사람 몇 몇이 어느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그 지역의 실질적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지만 특정 인사 몇을 통해 한 지역의 모습이 급변한다면 그것은 더욱 큰 문제다. 그것은 패권 추구에 대한 욕망이 낳은 기형아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고아 출신 거지에서 황제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중에는 과거에 급제하고 그 채점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 물론 그것은 실력에 의한 정당한 급제였고 올바른 채점이었다. 문제는 합격자가 특정지역에 편중된데 있었다.

주원장은 재시험을 치르게 했지만 결과가 같이 나오자 합격자와 채점자를 모두 죽인다.

이른바 인재의 지역할당제를 위한 극단적 처방이었다. 그것은 이후 왕조가 교체된 후청나라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지켜지는 대원칙이 된다.

전북 인사의 약진이 한국 사회의 통합과 균형적 발전을 위한 합의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주원장의 대원칙과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특정 지역의 패권추구도 아니다.

아무리 전북 전성시대를 얘기해도 현실은 여전히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인구 감소와 경제적 위축이다.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없이 전북 전성시대는 요원하다.

전주고 63회인 나는 흔히 말하는 뺑뺑이다. 고마운 것은 내가 대한민국 어디에 가도 전주고출신이라는 이유로 받은 과한 환대였다.

호남에는 우호적이지 않던 이들이 전주고에 대해 가지는 그 모순된 반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패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전북 전성시대가 패권 추구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전북인을 기망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되어야 나래를 편다.”

전북 전성시대를 열기위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디에 있을까.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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