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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창백한 푸른 점, 그리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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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창백한 푸른 점, 그리고 인간
  • 전민일보
  • 승인 2015.06.0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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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칼럼니스트

 
1901년 제주도에서 제국주의와 그에 편승한 종교세력의 압제에 대한 민중봉기가 있었다. 흔히 ‘이재수의 난’이라 얘기한다. 그런데 이 비극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이 하나 있다. 어떤 강연에서 나온 얘기다.

“이재수의 난이 실패한 요인 중 하나로 제주 똥돼지가 있다. 봉기에 참가했던 민중 상당수가 똥돼지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명에 돼지가 걸림돌이 되다니.. 단순한 우스갯소리일까.

고(故) 정두희 교수도 조선후기 민란에 대해 설명하면서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다. “농민은 절대 농번기에 봉기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굶을지언정 논과 밭에 심겨진 생명이 타들어가는 것을 결코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농민이 일어섰다면 그 체제는 최소한의 건강성마저 상실한 것이다.”

어찌 제주 똥돼지 뿐이겠는가. 내 어머니도 집을 나설 때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강아지 생각에 고민하신다. 나는 굶어도 가축은 굶기지 못하고 내입에 물이 못 들어가도 논의 모가 타들어가는 것은 볼 수 없다. 그것은 가축과 작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다.

자연에는 유해(有害)한 생명이 있다. 물론 규정은 인간이 만든 기준에 의해서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해한 생명의 종류와 수는 미생물에서부터 식물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많다.

한반도의 남쪽에서 멸종한 한국 호랑이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인간에게 피해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멧돼지와 고라니 같은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은 이유다.

광대한 우주 속 ‘창백한 푸른 점’이 보이저호가 보내온 지구 모습이다. 그 미세한 먼지 같은 존재감도 태양계라는 한정된 공간속에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와 같은 아름다운 별을 알지 못한다. 바로 생명 때문이다. 화산, 지진, 태풍, 그리고 쓰나미 까지도 지구의 생명성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바로 천지불인(天地不仁)인 이유다. 하물며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은 말해 뭣하겠는가.

하나의 위령비가 눈길을 끈다. ‘인류복지와 동물보건을 위한 그대들의 희생, 헛되지 않으리니. 넋들이여 고이 잠들라’

국립수산과학원이 연구 과정에서 희생된 실험동물의 넋을 위로하고, 연구자들에게 생명존중 의식을 심어주려고 위령비에 새긴 문구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얘기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독단과 생명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의미하진 않는다. 인간도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간혹 동물을 잔인하게 도살하거나 학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모두가 인간에 대한 박애정신을 소유한 사람이라 얘기할 수 없을진 모른다. 하지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가 동물학대라는 점 역시 그렇다.

인간은 제2의 지구를 찾는다. 가장 가능성 있는 곳으로 얘기되는 곳이 화성(火星)이다.

그래서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향하는 노정에 지원자가 넘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낮지만 나 역시 화성에서 지구를 보는 날을 기대한다. 지구와 같은 별을 만든다는 것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제 테라포밍(Terraforming)을 통해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별로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탄생한 그곳은 과연 지구와 같을 수 있을까. 분명 새롭고 이국적일 것이다.

그래도 화성이 지구와 같아질 순 없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그 어떤 별도 인간에게 지구와 같은 안락함과 혜택을 줄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리고 그 풍요의 근원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생명 하나하나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익과 유해한 생명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권리일 수 있다. 다만 인간을 위해서도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잊어선 안 된다.

똥돼지에게 줄 먹이와 논에 들어가는 물 생각에 잠 못 자는 농민의 마음이 바로 인간생존의 기본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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