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국내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 잔혹하게 학살당한 전북출신 의병장 3명을 포함한 28명의 항일투사가 순국 106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본보 2월 28일 1면>
13일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지난 2월 토지주택 박물관과 국가기록원에서 항일의병장 등 259명의 문건을 찾아 의병장 41명의 공적서를 만들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는데 이중 28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건국훈장을 추서 받는 항일의병장 28명은 경남 12명, 경북 5명, 전남 6명, 전북 3명, 강원도출신 2명이다.
이들 항일투사들은 15일 재6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될 예정이다.
이들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07~1909년사이에 50~400여명의 의병대를 조직해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인 지리산 가야산 태백산맥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일제의 ‘남한 대 토벌작전’때 체포되어 학살당하거나 전사 순국했다.
정 소장은 일제가 작성한 ‘진중일지’(토지주택박물관 소장)와 ‘폭도에 관한 편책’(국가기록원), ‘조선 폭도토벌지’ 등의 자료를 분석해 항일의병장 41명과 무명항일투사 218명의 기록을 찾아내 지난 2월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했다.
이번 문건에 따르면 김진명(金辰明·44세·1863~1907년·진안군 진안읍)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진안에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경찰서와 우체국 등을 습격했고, 1907년 12월1일 일본군에 체포된 후 모진 고문 끝에 참수(斬首)로 순국했다.
또 이내구(李內逑·~1908·전주) 의병장은 1907년부터 기삼연 의진에서 이남규(李南奎)와 이정섭(李丁燮)등과 함께 의병 100여명을 지휘했으며, 1908년 11월7일 3명 모두 체포돼 총살됐다.
안내성(安乃成·1909·전북 재동 계수역) 의병장은1907년부터 전북 남원 지리산을 중심으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결사항전 했고, 1909년 1월16일 동지 5명과 함께 장렬히 숨을 거뒀다.
문건을 찾아 공적서를 만들어 서훈을 신청했던 정재상 소장은 “항일의병들은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하며 목숨을 바친분이다”며 “정부는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보훈사업을 펼쳐야한다”고 강조했다.
윤동길기자
김진명(金辰明), 이내구(李內逑),안내성(安乃成) 등 3명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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