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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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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설화
  • 전민일보
  • 승인 2014.05.09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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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미 전북문화관광해설사·행촌수필문학회장

 
글로 전하는 역사와 말로 전해지는 설화. 역사를 챙기면 설화가 울고 설화를 다독이면 역사가 분노한다. 이도저도 어려운 숙제의 부담을 가득안고 닷새 동안 이어진 강행군은 끝이 났다.

모 방송의 드라마 <정도전>으로 다시 부각되는 조선태조이성계에 관한 역사와 설화를 중심으로 이론과 현장학습을 겸한 교육이었다. 그에 연계된 전북지역 해설사들이 받은 하루 9시간씩의 강의나 10시간의 현장학습은 그러나,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강한 카리스마와 함께 절제할 줄 아는 여유, 기다릴 줄 아는 느긋함과 민첩하게 해치우는 단호함 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성격.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중국 원나라와 명나라의 끊임없는 갈등에 같이 휘둘리고 엎친 데 덮친다고 들끓는 왜구에 골머리를 앓던 고려 말의 정세. 오랜 동안 왕권을 노리며 준비를 한 야심가, 시류에 따라 자연스레 왕권을 쥘 수밖에 없었던 팔자소관의? 왕 조선태조이성계.

강사마다 다른 의견과 다른 주관의 강의에 뚜렷한 식견도 주관도 없는 난 그저 흔들리며 혼란에 혼란을 겪을 밖에.

다양한 대중매체가 전하는 갖가지 이야기가 역사와 설화의 확실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유난스러운 이때 받게 된 강의라 더 한지도 모르겠다. 듣고 배운 또 다른 이 많은 이야기를 현장에서 어떻게 풀어낸단 말인가.

수강자 대부분의 공통된 문제이고 고민이기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인의 시구로 혼란스런 서로의 마음을 달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죄지은 것 같이 무거운 마음 내려놓기가 참 힘들다.

사학자는 사실 위에 군더더기로 입혀진 이야기는 사정없이 걷어내라고 했다. 설화전문가는 무한하게 엮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떼어내고 긁어내고 그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빈 그릇만 남아서 소리만 요란하지는 않을까. 부풀리고 포장한 역사의 언저리이야기는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록된 역사라고 다 바르고 떠도는 설화라고 다 거짓일 수는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기록이고 흘려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 설화다.

한 발 두 발 걸으며 발자국을 내는 것이 역사라면 바람 따라 흔적 없이 떠도는 것이 설화다. 역사는 아는 자가 기록해서 이어왔지만 설화는 알게 모르게 듣고 퍼트려 또 다른 이를 통해 돌고 돌며 이어오는 것이기에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릴 일은 없다.

이 둘을 어떻게 다독이고 버무려 바르게 전달할 수 있을까. 십년을 넘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되풀이 하면서도 항상 들던 의문과 생각들에 복잡함만 덧 씌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근래에 일어난 나라 안 사건 사고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방송들이 앞 다투어 전하는 소식에 안심하고 기대도 걸어보며 잠든 저녁이다가도 아침이 되면 다시 뒤집어진 소식에 분노하는 날들 아닌가.

이런 세상에서, 이런 사실에서 백년, 많게는 천년도 넘는 세월 저편의 이야기를 어찌 다 옳다고 믿으며 다 맞는다고 고개 끄덕일 수 있겠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흐른 세월 또한 시치미 뚝떼고 있는 것을.

기록은 한정되고 풀이는 다양하고 곁들인 이야기는 끝이 없다. 역사적인 사실인 이성계의 황산대첩 진군로와 회군로 곳곳에 펼쳐진 많고 많은 이야기는 기록의 역사를 뛰어넘는다. 진군로에는 대승을 거둘만한 계시와 징조가 보이는 그럴싸하면서도 황당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회군로에는 왕권을 향한 교두보 역할의 지명이야기와 왕이 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정당성이 기록을 바탕으로 깔려있다.

왕조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일인가. 시대적인 배경과 흐름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는 절실함에 탈출구가 보인다면 매달리리라. 설사 그 탈출구가 유토피아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은 본능일 수 있다. 그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과 그것을 견디며 죽음을 택하는 사람 또한 또 다른 바람은 있을 것이다.

다 같이 걷는 길이라고 생각까지 같을 수는 없으리라. 여러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씌어져서 전해지고 익히며 또 다른 역사를 창조하는 것.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은 역사를 따라 슬금슬금 걷다가 답답해서 달리다가 다시 훨훨 날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은 유언비어라고 일축해버리는 이야기들도 먼 훗날 역사를 바탕으로 한 설화로 더 많이 퍼져서 역사와 설화가 서로 어깨동무하고 서로의 이야기가 맞는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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