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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두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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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두렵다고?
  • 전민일보
  • 승인 2014.05.08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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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농촌지도사

 
한국사와 중국사의 차이 중 하나가 환관(宦官)의 역할이다. 중국사에는 황제권을 앞세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환관이 곧잘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사에서 환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많지 않았다. 양자의 차이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은 중국의 강력한 황제권과 한국의 강한 신권(臣權)의 차이에 있었다. 고려는 말할 것도 없지만 조선에서도 신권이 강했다.

때문에 왕의 측근인 내시(內侍)의 역할이 한국사에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고려와 조선에서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군주가 몇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 군주가 연산군(燕山君)이다.

성종(成宗)의 적장자(嫡長子)인 그는 역대 조선 군주 중에서도 정통성 시비가 없는 몇 안 되는 왕이다. 그가 무리하면서까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러가지 이유를 쿠테타 명분으로 내세운 소위 반정(反正)세력들이 외교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세운 왕에 대한 폐위와 교체 명분이 명(明)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찬탈(簒奪)이었기 때문이다.

황음무도(荒淫無度)와 잔혹한 군주로 얘기되는 연산군, 그가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TV 프로그램 하나가 인상적이다. EBS <역사채널e>다. 그런데, 시작 전에 강렬한 문구가 하나 등장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人君所畏者史而已)”

놀라운 것은 이 말을 한 당사자다. 바로 연산군이기 때문이다. 한국역사상 최고의 폭군(暴君)으로 얘기되는 연산군조차 역사를 두려워했다?

여기서 우리는 묻게 된다. 역사를 두려워했다는 임금이 왜 폐위돼 종묘에도 들지 못한 것일까.

연산군이 말한 이 얘기는 분명 실록에 기록돼있다. 하지만, 위에 등장하는 문구는 절반의 진실만을 말해줄 뿐이다. 연산군이 이 얘기를 한 것은 폐위되기 불과 18일전의 일이다.

잠시 연산군 12년(1506년) 8월 14일 그날로 돌아가 얘기의 전개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전교하기를,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서뿐이다.(傳曰人君所畏者史而已) 춘추에 이르기를 ‘어버이를 위하는 자는 은휘(隱諱)한다’하였으니, 사관은 시정만 기록해야지 임금의 일을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근래 사관들은 임금의 일이라면 남김없이 기록하려 하면서 아랫사람의 일은 은휘하여 쓰지 않으니 죄가 또한 크다. 이제 이미 사관에게 임금의 일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아예 역사가 없는 것이 더욱 낫다. 임금의 행사는 역사에 구애될 수 없다.”

어떠한가. 이것이 과연 역사를 두려워하는 군주의 모습인가. 앞선 진실의 나머지 절반은 그의 마지막 말에 담겨있다. 그리고 연산군이 하고 싶었던 진짜 얘기는 바로 이것이다.

‘아예 역사가 없는 것이 더욱 낫다. 임금의 행사는 역사에 구애될 수 없다.’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라는 말을 남긴 후 18일째 되던 날 연산군은 왕의 지위에서 군(君)으로 전락한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는 폐위되던 날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고 있다.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난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하되 말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 번번이 대군·공주·무보(姆保)·노복들을 계칙(戒勅)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마지막 순간 그의 곁에는 총애했던 장녹수도 그에게 녹을 받던 그 어떤 신하도 없었다.

오직 정비(正妃)인 신씨(愼氏)만이 있었다. 그가 죽던 날 실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죽을 때 다른 말은 없었고 다만 신씨를 보고 싶다 하였습니다.(臨死無他語, 但欲見愼氏)”

연산군이 두려워했던 것이 정말 역사였을까. 진정 그랬다면 그가 사랑하는 부인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왕의 지위도. 중요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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