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항거였습니다”
이송재(55) 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 회장은 5.18에 대한 의미를 짧게 대답했다.
이 회장은 전북대학교 출신으로 20대 청춘 모두를 민주화에 쏟아 부었다.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던 이 회장은 “그 시절에는 온 마음이 열정으로 가득찼다”며 “매일같이 철야농성을 벌였고, 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단 한 가지 바람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5.18 첫 희생자인 이세종 열사가 전북대에서 사망하기 직전 같은 공간에 있기도 했다.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농성을 벌이던 이 회장은 5월17일 23시30분께 학교를 빠져나왔다. 이 회장이 빠져나간 직후인 5월18일 0시께 이 열사는 계엄군의 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가격당해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이 회장은 “이세종 열사는 같이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후배였다”며 “이 열사의 죽음은 한참 후에 전해 듣게 됐다”고 말했다.
수배 중이었던 이 회장은 학교를 빠져나간 후 계속해서 도피생활을 했고, 결국 한 달 뒤쯤 붙잡혀 옥살이를 했다. 이 열사의 죽음도 옥중에서 듣게 됐다. 이 회장은 “후배의 사망 소식에 가슴이 미어졌다”며 “도피생활과 옥중에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상황을 고충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지만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5.18 민주화운동기념일은 32주년을 맞는다. 32년의 긴 역사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도 않다.
이 회장은 “5.18 운동과 관련해 유공자가 선정되는 등 사회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그뿐이다”며 “광주 망월동 묘역에 누워있는 분들, 또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가 명백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5.18에 대한 책임자는 없는 것이다”며 “32년을 맞는 지금도 완벽한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재 이 회장은 서해대학교에서 방사선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젊음을 민주화에 바친 그가 제자들에게 항상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연대의 힘’이다.
이 회장은 “제자들에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이 뭉치면 해낼 수 있다고 항상 말한다”며 “연대, 협력의 힘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지리산 종주를 시키기도 하고, 협력해야 풀 수 있는 과제도 많이 낸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국민들은 연대의 힘으로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 5·18 운동까지 많은 것을 이룩해왔다”며 “젊은이들이 그 정신을 계승시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젊은이들이 사회적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금의 젊은이들은 개인화가 많이 되어있다”며 “대학생들이 외치고 있는 ‘반값 등록금’도 그 하나의 목적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도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주의 큰 이슈인 시내버스 파업도 단순히 자신이 불편하다고 불평만할 것이 아니라 왜 파업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관심도 가져줬으면 한다”며 “젊은이들의 사회참여는 우리나라를 한층 더 성숙하게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윤가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