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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도시 태동지, 천년고찰 남원 선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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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도시 태동지, 천년고찰 남원 선원사
  • 천희철
  • 승인 2012.02.07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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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의식에 사랑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백공산 날줄기 끝, 풍수지리사상의 비보사찰-

선원사 저녁 종성 옛 듣던 소리로 구나 북문 안을 들어서니 서리역졸 문안커날 명일사 거행을 분부허시고 춘향집을 찾어갈 제 ......
판소리 춘향가 중 한 대목이다.

남원성 동문 밖 선원사의 저녁 종소리는, 남원 사람들한테는 꽤나 마음 속 깊이 각인이 되어있었나 보다. 판소리 춘향가에도 선원사의 저녁 범종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춘향가 중 이 대목은 이도령이 과거에 급제를 한 후, 박석티고개를 넘어서 춘향의 집으로 향하는 대목을 그린 것이다.

신라 천년고찰 선원사. 선원사는 남원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함께해온 전통적인 비보사찰이다. 풍수지리사상의 기반위에, 민초들의 애환과 함께하는 선원사,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민의 행복과 안위를 기원하는, 사랑의 도시 이미지의 태동지였다.

전북 남원시 도통동에 위치한 선원사(禪院寺)는, 현재 남원 시가지 한복판에 자리한다. 신라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한다. 도선국사는 각 지방에 많은 사찰을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데, 남원고을에는 만복사의 창건을 비롯하여 대복사를 창건하였으며, 용담사지 7층 석탑을 건립하는 등 불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신라의 고승인 도선국사가 현 위치에 선원사를 창건하게 된 것은, 풍수지리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남원시의 지세가 교룡산은 객산(客山)이고 백공산이 주산인데, 주산인 백공산의 산세가 매우 약하고 객산의 산세가 강하므로, 인위적으로 강한 것을 누르고 약한 것을 복 돋아 줄 필요가 있다고 해서 선원사를 백공산 날줄기의 끝에 세운 것이라 한다.

또한 정문 현판에 ‘만행산선원사’라 쓴 것도, 백공산의 모체가 보절면 천황봉 아래 만행산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큰 힘으로 교룡산을 눌러보자는 의도에서였다고 전한다.

도선국사는 남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요천을 보면서, 남원의 지세가 물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 물에 위험한 남원을 구할 방법을 생각한 도선국사는, 선원사를 창건하면서 약사전 앞에 두 개의 석주를 세워놓았다.

이 석주는 바로 남원이라는 배가 떠내려 갈 것을 걱정해, 배를 묶어놓기 위한 것이다. 아마도 이 작은 석주가 없었다면, 남원은 그대로 물에 정처 없이 떠도는 배에 지나지 않아,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아직도 선원사 약사전 앞에는, 배를 묶어두는 입석이 서 있다. 이 작은 입석 하나가 남원이라는 커다란 배를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약사전 뒤에 자리한 칠성각 문 위에 조형을 한, 별주부인 자라와 토끼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물에 빠진 토끼 같은 약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상징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래저래 남원 선원사는 물과 연관이 지어진다. 즉 물이 차면 좌초될 수밖에 없는 남원을 꽁꽁 붙들어 매어놓고, 그래도 물난리가 난다면 자라가 토끼를 구하 듯, 모두 구해내라는 뜻일 것이다. 아마도 남원이 물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은 것도, 도선국사의 석주와 삼성각의 별주부 때문은 아닐까?

선원사를 처음 창건했을 때는 당우가 30여 동에 70~80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큰 절로서, 만복사에 버금가는 규모였다고 한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만복사와 함께 소실되었으며, 그 후 숙종 20년인 1694년에 새로 부임한 김세평 부사가 신도계와 협의, 이듬해 선원사를 복구하였다.

선원사는 1988년 7월 28일 전통사찰 제5호 지정되었으며, 보물1점, 도유형문화재 2점과 도 문화재 자료 1점을 보유하고 있다. 보물은 철조여래좌상으로 1965년 7월 16일 보물 제422호로 지정되었으며  앉은키 1.2m, 무릎 폭은 90cm로 당당하고 균형 있는 형태로서, 추상적인 얼굴과 결가부좌한 자세, 얇고 간략한 의문 등 고려시대 철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남원의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하고 선원사는, 늘 남원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인가 보다. 남원시가 표방한 사랑의 도시 근원은 선원사 창건시 부터 시작된 듯하다. 과거부터 선원사는 남원의 번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어 각별히 보호하고 후원해 왔으며, 스님들과 신도들의 노력으로 현재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천년 역사를 넘은 선원사는, 남원 지역의 중심 사찰로서 1915년에 남원천변에 괘불탱을 걸어 기우제를 지내 왔다. 그러한 남원을 걱정하는 마음이 늘 가득 찼던 선원사. 현재에도 선원사는 남원지역의 어르신, 장애인 등,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받기 쉬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장면 나누기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오는 등, 지역사회 복지를 위한 전통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0년 주지 소임을 맡아 취임을 한 운천스님은, 선원사에 와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일이었다. 넉넉지 못한 재정에서도 스님짜장의 봉사는 물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지역에 사랑을 베푸는 것에 한 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 년이면 3만 여명의 소외된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스님짜장’을 봉사하고 있는 선원사. 그 버스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남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천년세월을 그렇게 전해진 남원과 선원사는 사랑의 보금자리로 기억되고 있다./남원=천 희 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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