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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서 용은 옛말, 부잣집에서 판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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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서 용은 옛말, 부잣집에서 판사난다
  • 전민일보
  • 승인 2009.10.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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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사법시험은 고시공부 하는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걸고 도전해보는 최고의 시험이며, 출세의 관문이다. 고시합격은 하루아침에 신분상승을 의미한다. 그래서 매년 10월 중순이면 고시촌의 아침은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다름 아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 시즌 때문이다.
  시험 발표가 나면 합격자와 관련한 숱한 일화들이 쏟아져 나온다. 17전18기 끝에 합격을 이뤄낸 눈물겨운 인간 승리자가 있는가 하면, 고시 실패로 인해 결국 낭인(浪人)으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 특히 사법시험에 인생을 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 중엔 폐인이 되는 것은 물론, 가정까지 파탄에 이르게 해 온 가족이 고통을 겪기도 한다.
  사법시험은 법조인이 될 자격을 검정하는 시험으로, 제1차(객관식), 제2차(서술형 주관식), 제3차(면접)에 걸쳐 치러진다. 합격 후 반드시 사법연수원을 수료해야 판, 검사 및 변호사의 자격이 주어지므로, 엄밀히 말하면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법이 갖고 있는 권력과 한국사회 법조인의 위치가 엉키면서 사법시험은 등용문으로 변했다. 시험만 합격하면 출세가 보장되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시촌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과거 사법시험은 집안사정이 어려워 정규 학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독학을 해서 ‘입신양명’을 꾀할 수 있는 등용문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상고를 나왔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단번에 ‘신분상승’을 이뤘던 사람이다.
  올해 신규 임용된 판사 10명 중 4명이 특목고 아니면 강남 고교 출신이라고 한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18일 공개한 대법원 통계를 보면, 최근 임용된 판사 가운데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강남 소재 고교 출신의 비율이 1999년 9.6%에서 2009년 37.0%로 급증했다는 것. 현재 현직 판사 2천386명 중 특목고 출신은 외고 147명, 과학고 18명 등 165명으로 6.9%다. 지금 같은 추세대로라면 전체에서 특목고 출신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사법부의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다른 권력집단과 마찬가지로 사법부의 중심축도 기존의 ‘지역 명문고’에서 ‘특목고·강남’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통계치로 확인된 것이다. 최근 신임판사 10명 중 4명이 특목고·강남고교 출신이란 사실은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이제는 우리 속담집에서 사라질 때가 됐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두뇌를 좋게 만드는 건 오직 돈밖에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재력을 바탕으로 풍부한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진학하는 교육 사다리론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 갈등을 조정·해결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사법부의 인적 구성마저 특정 계층으로 채워진다면 좀 우려스러운 일이다.
  실력 있고 똑똑한 학생들이 특정 고교에 몰리고, 그 학교 출신이 엘리트 집단으로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탓할 일은 결코 아니다. 과거에도 명문고 출신의 편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남·외고 출신들의 판사 싹쓸이는 상류층의 가치관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 때문에 그 심각성이 크다. 특목고와 강남 출신의 약진을 우려하는 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지역적·계층적 배경에서 성장한 판사들에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특정한 가치관과 세계관이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상사 모든 게 어느 한 쪽으로 쏠릴 땐 부작용이 나타나는 법이다.
  원칙적으로 판사는 입법자가 정해놓은 법률에 따라 특정 사안을 판단하는 ‘제한적’ 역할을 한다지만 개별 사건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판사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다른 사법적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인식이다. 특정의 유사한 배경을 가진 판사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판의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제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사법시험 제도는 2016년까지 유지하다가 2017년에 끝난다. 따라서 향후 다양한 계층을 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임용 제도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판사는 의식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正義)를 세우라고 하지 않던가.

신영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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