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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한 홈런 제조기... 한국야구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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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한 홈런 제조기... 한국야구 대명사
  • 소장환
  • 승인 2006.08.21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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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을 보듬고 사는 사람들-<3>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김봉연

-추억의 그라운드에 서니 팬들의 뜨거운 함성 생생
-1972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명성 주역
-82년 프로입문 해태 공포의 4번타자 맹활약
-88년 현역 마감... 극동대학 강단서 후학양성



◇설레는 만남…한국 프로야구 원조 ‘홈런왕’을 만나다

2006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에 출범해 올해로 24살이 됐다.
출범 당시 군사정권인 전두환 정부가 국민들의 관심사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위해 우리나라는 프로 스포츠의 입지 기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밀어붙인다는 비아냥거림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대로 흘러갔고, 올해 환갑을 맞은 어른들이 혈기왕성한 30대였던 그때 그 시절에 시작한 프로야구는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다. 아울러 초등학교에서는 야구부 창단 붐이 일었고, 동네 어귀마다 아이들이 모이면 빨래 방망이라도 들고 나와 테니스공을 던지면서 야구를 즐기던 그때였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기자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프로야구 선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프로야구 원년의 ‘홈런왕’ 김봉연(54·사진) 선수다.
이제는 아시아의 홈런왕으로 이승엽 선수가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김봉연 선수야말로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출범 첫해 홈런왕으로 이름을 아로새긴 원조 홈런왕이다.
동네 빈 터에서 모인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를 졸라 얻어 입은 해태 유티폼을 차려입거나 대충 비슷한 빨간 티셔츠를 걸치고 나와 김봉연 선수의 호쾌한 어퍼스윙을 흉내 내면서 모두가 홈런왕이라고 자처하고 했다.
게다가 그 덕분에 동네 아이들끼리 두 팀으로 나눠 시합을 할 때는 늘 힘센 아이가 있는 편이 ‘해태’가 됐고, 반대편은 ‘MBC 청룡’이나 ‘삼미 슈퍼스타즈’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TV에서만 볼 수 있던 홈런왕을 11일 오후에 전주종합경기장내 야구장에서 만난다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배고픈 시절, “야구선수가 되면 매일 자장면 먹는 줄 알았다”

왕년의 홈런왕 김봉연. 그는 88년에 ‘선수’ 꼬리표를 뗀 뒤 코치와 2군 감독 등을 거쳐 후배 김성한 감독이 해태 사령탑에 오르면서 야구계를 떠났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인 그는 김봉연이라는 이름 뒤에 다시 ‘교수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변신을 했다.
그는 2001년 2학기부터 충북 음성에 있는 극동대학교에서 사회체육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최근까지 극동대에서 홍보실장과 학생처장, 학과장 등 1인3역으로 바쁘게 살던 김봉연 교수는 “너무 힘들어 얼마전에 학생처장자리에서는 물러나 홍보실장과 학과장 노릇만 하고 있다”고.
그런 그가 이날 전주를 찾게 된 이유는 오래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생(故 김봉대)의 부인이 전주 GS마트에서 옷가게를 개업해 이를 축하해주기 위해 서울에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
이처럼 형제애가 남다른 김 교수는 7남4녀의 11남매 가운데 다섯 번째로 전주 전동에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태어났다.
누구나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 김 교수는 전주 중앙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야구를 하던 형을 기다리면서 교무실 창문을 넘겨봤는데 선수들이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 장면을 목격해 야구를 하게 됐단다.
“진짜 야구를 하면 매일 자장면을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다”면서 너털웃음을 짓는 김 교수는 큰 키와 빠른 발 덕분에 처음부터 후보라는 걸 경험하지 않고 주전으로 활동했다.
“홈런왕과 빠른 발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기자의 의아스러움에 김 교수는 “무슨 말씀, 야구선수이기도 했지만 전주 북중 다닐 때까지 육상선수도로 뛰었다”고 설명한다.
이어 김 교수는 “기억에 100미터를 최고 11초6 정도까지 뛰었던 것 같다”면서 “내가 직진은 빠른데 턴에 좀 약해서 말이야”라면서 다시 웃는다.
하지만 실제로 김 교수는 연세대 재학시절인 1977년 대학선수권에서 ‘도루왕’에 오를 정도로 빠른 발을 과시했고, 그에 앞서 1973년 춘계리그 고려대전에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물론 군산상고 시절에는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와 맞붙어 9회말에 1-4의 점수를 5-4로 뒤집는 파란을 일으키며 ‘역전의 명수’라는 신화를 쓰는데 김준환 원광대 감독과 함께 주역으로 뛰었다.
김 교수는 또 1973년 추계리그 동아대전에서 대학야구 사상 최초로 3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1975년에는 제11회 아시아선수권대회 홈런왕 자리에 올랐다. 이후에도 김 교수는 실업야구에서 3년 연속 대통령배 실업리그 홈런왕에 오르기도 했고, 아마추어 통산 3연타석 홈런의 진기록을 6번이나 작성했다.
또 프로에 들어와서도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22개)과 득점왕(55득점)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김일권-김종모-김성한-김준환-김무종 등으로 거명되는 과거 해태 공포의 타선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 4번 타자로 맹활약하면서 팬들의 기억 속에 ‘김봉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깊이 새겼다.

◇‘대학교수’가 된 홈런왕…“요즘 아이들 이승엽은 알지만 김봉연은 잘 모르더라”

김봉연 교수가 홈런왕으로 프로야구 무대를 누빈 것은 82년부터 88년까지 모두 7시즌 630게임. 이때까지 김 교수가 쳐낸 안타는 모두 596개로 이 가운데 110개가 담장을 넘어갔다.
하지만 은퇴 이후 벌써 18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2001년 2학기 극동대 강단에 처음 선 김 교수가 학생들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손 좀 들어봐”였다고.
이날 첫 강의 수업에 들어 온 학생은 모두 67명, 이 가운데 최소한 절반 정도는 손을 들을 것이란 것이 김 교수의 내심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을 드는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고, 학생들은 서로 “너 알아?”하는 듯한 의아한 표정들만 주고받았다.
조금 당황한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억을 더듬어주고자 “옛날에는 내가 이승엽처럼 유명한 프로야구 홈런왕이었다”고 설명해줬다.
그런데 학생들은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에이~ 교수님, 장난하지 마세요”라는 반응을 보여 김 교수를 난처하게 했다.
이에 김 교수는 “집에 가면 부모님들께 ‘옛날 해태 김봉연을 아느냐’고 여쭤보고, ‘그 김봉연이 우리 교수님이에요’라는 말만 해보라”고 말한 뒤 진땀나는 수업을 진행했단다.
그랬더니 다음 수업 시간에 또다시 강의실이 떠들썩해졌다. 부모님들을 통해 왕년의 홈런왕에 대한 말을 들은 학생들이 “교수님, 우리 아빠가 집에 한번 놀러 오시래요”, “집에서 교수님 사인 좀 받아 오라는데요”라면서 한꺼번에 신기한 느낌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홈런왕’에서 ‘대학교수’·‘스포츠 해설위원’…“더 늦기 전에 프로팀 감독을 해보는 게 앞으로의 목표”

선수시절 헬맷이 벗어질 정도로 시원한 스윙과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장쾌한 홈런을 선보이다가도 빈볼을 던지는 투수에게는 응분의 징계(?)를 불사하지 않던 뜨거운 남자 김봉연 교수가 “나이 더 먹기 전에 프로팀 감독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목표를 말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진짜로 감독 제의가 한 번도 없었나요?”
김 교수 대답이 걸작이다. “교수 출신 감독이다 보니까 내가 몸값이 좀 많이 나가는 편이라서….”
김 교수는 현재 대학 강의는 물론 지난해부터 MBC-ESPN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조만간 케이블TV ‘J골프’에서는 골프 해설도 할 예정이다.
물론 야구도 즐기고 있다. 사회인 야구에서 ‘MBC-ESPN 올스타팀’으로 허구연, 한만정, 양상문씨 등과 함께 뛰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연예인 야구단 ‘한’과 역대 프로야구 ‘올스타’ 팀과 게임에도 출전해 아주 오랜만에 TV에 모습을 보여 올드 팬들을 기쁘게 했다.
“마음은 금방 무슨 일(홈런)이라도 낼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더구만.”
그래도 김 교수는 이날 안타를 쳐 감투상을 받았다./ 소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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