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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공감 대신 실패할 자유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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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공감 대신 실패할 자유를 주자
  • 전민일보
  • 승인 2024.05.02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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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십 대인 우리 아이들 태어날 무렵 육아의 화두는 ‘공감’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었는가?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랬구나~”를 말하는 엄마가 배운 엄마, 깨어있는 엄마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그런 유의 책을 보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운 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말처럼 되지 않고, 상호작용인 결국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책의 사례와 너무 다르고 내가 직접 겪어내어야 하는 삶이었다. 어느날은 내가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화를 내지 않을 일도 그동안 참았던 만큼 엄청나게 비정상적으로 터져나오는 날도 있었다.

왜 나는 그렇게까지 노력했을까? 나를 닮고 남편을 닮은 가족이 하나 늘어났는데 나는 그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싶은 맘이 앞서서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인터넷엔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 ‘절대 하면 안 되는 말’ 등의 제목을 단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내가 잘 못하면 아이의 정서에 문제가 생긴다’, ‘아이의 자존감에 문제가 생긴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나는 좋은 엄마, 행복한 아이라는 강박에 육아를 생활로 가져오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던 거 같다.

그냥 원래 아이바오가 푸바오를 기를 때 DNA에 각인된 것들을 가지고 보고 배운 적 없어도 본능적으로 키우는데, 분명 나도 오랜 시간 유전되어 온 나의 DNA에 육아에 대한 무의식의 기억들이 있을 터인데,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들로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고 뒤돌아봤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키우는데 지능보다는 직관과 본능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과 함께 깨달았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했던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부모는 다정한 태도, 긍정적인 감정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 그리고 아이 또한 그 어떤 상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실은 불가능하다. 행복은 그런 평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넘어지고, 좌절하고, 실패한 뒤 그것을 겪어내는 나의 자세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데 왜 아이의 힘을 믿지 않는가? 본래 사람은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그것을 믿고 나는 기다려야 했다. 믿고 기다리는 것만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세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힘들다. 싫은 말하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말하다 보니 엄마들의 말이 아무리 옳은 소리여도 잔소리라는 프레임이 갇히는 것이다.

내가 참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이는 사회에서 충분히 실패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공부일 수도 있고, 친구 관계일 수도 있으며, 본인의 기질과의 싸움일 수도 있다.

한동안 나는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오늘도 애썼어”라는 말로 인사는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을 “오늘도 재밌었어”로 바꿔야겠다. 다짐했다. 왜냐면 그냥 하루를 사는 건데 너무 애썼다고 해주나 싶었고, 그냥 재밌는 하루로 바꾸고 싶은 일종의 주문 같은 거였는데, 요즘 난 다시 애쓴다 하고 싶어진다. 산다는 것이 그런 거 같아서 재미만으로 될 수 없는 것들이니까. 산다는 것을 실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없고, 그냥 해야하는 것들이 있으며, 늘 반복되는 일상을 그저 습관처럼 움직여야 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먹을 것을 챙겨 먹고,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고, 먹고 난 것을 치우고, 신발을 정돈하며 나가는 그런 생각 하지 않고 움직여지는 습관 말이다. 나는 그런 것을 가르쳐야 했고, 나부터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거였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심리의 문제로 정서의 문제로 다가가는 순간 산다는 것은 피곤해지는 거였다.

‘공감’이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저 ‘인정’만 해도 된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럴 수 있겠다. 정도의 태도로 힘들 수 있고, 당연히 괴로울 수도 있고, 그런 실패와 좌절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아이들에게 주자. 그리고 아이들의 좌절 내구력, 회복탄력성을 믿자. 당신도 그렇게 잘 지나온 시간들이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괜찮은 어른을 만든 시간들임을 믿자.

아직은 어린 아이를 믿을 수 있는 힘이 부족한 거 같으면 나부터 믿어보자. 오늘도 우린 모두 애쓰고 있다. 사는 게 그렇다. 그러니 결국 모두 하루하루 잘 살아낼 것을 믿는다.

박선 참교육학부모회 전주지회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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