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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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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상흔
  • 전민일보
  • 승인 2023.08.16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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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9년 아산 현충사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국민학교 6학년때다.

금구에서 군산까지 버스로 가서 배를 타고 장항으로 건너갔다. 장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미군과 한국 여인이 나누던 상스러운 대화도 기억에 있다. 기다리던 열차엔 군인아저씨들도 있었다. 서 있는 내게 앉아있던 중년의 아저씨가 물었다. “너희들 어디서 왔나?” 김제에서 왔다는 소릴 듣고 그 아저씨는 자신의 동행과 이런 애길 나눴다. “전라도는 어딜가도 대우를 못 받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은 내 고향이 다른 곳에선 별로 인기가 없나보다라는 충격이었다.

1988년 총선 직후 대학 은사님의 논문에 쓰일 설문조사차 방문했던 청주에선 전북대에서 왔다는 소릴 듣고 주위를 둘러싼 노기에 찬 어른들의 모진 말을 들었다. “아니 전라도 사람들 투표하는 게 민주주의하는 사람들 행태야. 순 빨갱이들이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전라도 여자는 생활력이 강하지만 며느리는 절대 안 된다”던 경기도 여주 분, “전라도 사람에겐 방을 줄 수 없다”던 강원도 강릉 분.

지금까지 우리가 지역감정 폐해 운운했던 그 본질은 호남과 영남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호남을 혐오하는 것은 영남만이 아니라 호남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할지 모를 내 경험을 굳이 얘기하는 것은 전북인들의 분노를 유발하거나 타 지역 분들에게 원망의 말을 하고자 해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호남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의 원인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는데 있다.

잼버리 대회가 개막하기 일주일 전 그 현장을 지나치면서 작은 걱정이 들었다. 집중 호우에 따른 야영지 관리는 물론 비 그친 후 폭염은 어떻게 관리하려고 하지? 그럼에도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만큼 잘 되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비켜가지 않는다. 잼버리 대회를 계기로 전북도를 세계에 알리고 새만금 개발의 추진 동력도 얻고자 했지만 결과는 두 가지 모두 최악의 패착이 되고 말았다.

‘무능한 전라북도’,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00군 공무원’, 공격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사업타당성도 없는 새만금 개발을 위한 전라북도민의 욕심 때문에 ‘잼버리를 위한 새만금’이 아니라 ‘새만금을 위한 잼버리’를 만들어서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극언까지 나오고 있다. 어찌 전북도민에게 이토록 심한 모멸감을 안길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잼버리 대회는 분명 너무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유감스러운 것은 대회 진행 중 보여준 중앙 언론과 정치인들의 태도다. 설사 대회 준비와 운영에 아쉬움이 있어도 운영기간에는 일방적 비난을 자제하고 대회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움을 줬어야 한다.

책임은 대회가 끝난 후에 추궁하면 된다. 정확한 책임소재와 그 정도도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일방적 여론재판으로 대회 초반에 이미 잼버리는 파탄 나버렸다.

잼버리 장을 떠난 각국 대표단을 00군에서 또는 00시에서 융숭하게 대접해 해당국 대표단이 감사를 표했다는 뉴스는 전북도민에게는 또 다른 비수가 된다.

전북도민이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 각국 손님들을 다른 지자체 주민들이 환대했다는 소식을 맘 편히 들을 수 있겠는가?

밖에서 지내 본 나는 내 고향 전북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에서 볼 수 있었다. 전북인은 대단히 너그럽고 관대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겸손함이 지나쳐 자기폄하로 비춰질 때가 있다거나 정치적 논의의 장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막혀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타 지역 출신 언론인 한 분이 내게 이런 얘길 했다. “전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주가 대단히 큰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전주를 큰 도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라북도사람 말고는 없습니다”

전북도민의 상처 난 자존심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돌아볼 일이다.

장상록 칼럼리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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