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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저유가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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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저유가의 재앙
  • 전민일보
  • 승인 2016.04.22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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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학교 시절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가난한 것은 남북이 분단되고 석유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대 정부에서는 연근해에서 석유 시추작업을 추진했고, 해외에서의 석유 확보를 위한 투자를 병행했다.

그러나 석유가 쏟아져 나온다는 시원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요즘엔 석유가 나지 않아 못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게 부러워했던 산유국들이 요즘 석유 때문에 경제위기에 처하고 있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이 엄청나 기름값이 가장 싼 나라다. 중형 자동차에 휘발유를 가득 채울 때 우리나라에서는 60달러가 드는 데 비해 베네수엘라에서는 1달러 정도다. 그런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2년 전부터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배럴 당 100달러에서 30달러까지 유가가 하락하면서 국가재정이 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다.

전체 수출의 96%가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데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나 수입이 통제되고 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한 사람들이 매장 앞에 장사진을 치고 슈퍼마켓이 습격을 당하며 거리에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서는 통화를 마구 찍어내 물가는 1년 전보다 8배나 오르는 등 인플레에 시달린다. 그동안 석유를 내다 판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오면 경제가 잘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변변한 제조업 기반조차 키우지 않은 것이 화를 키웠다.

계속되는 저유가로 베네수엘라의 대외부채는 1,200억 달러에 이르고 채무불이행을 언제 선언할지 전전긍긍한다.

스위스 연방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베네수엘라가 13억 달러 상당의 금괴를 스위스로 수송했다고 보도했다. 금을 활용해 부채상환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석유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산유국들의 감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수년째 지속한 공급 과잉 문제로 당분간 석유 위기는 계속될 것 같다.

종전에 저유가는 원유 수입국의 호재였다. 비산유국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글로벌시장은 불안에 떨고 있다. 석유가 ‘검은 황금’에서 ‘검은 눈물’이 되었다는 말이 나돈다.

유가가 빨리 떨어지면 부작용이 생긴다. 건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나라 주축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산유국의 돈이 떨어지고 신흥국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세계 물동량이 줄고 우리의 수출산업이 고전하고 있다.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실보다 득이 크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정유회사들은 작년 영업이익이 5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석유 가격하락의 속도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정제 마진이 개선되어 이윤이 커진 것이다.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저유가의 불똥이 어디로 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석유의 축복이 재앙으로 변한 베네수엘라를 지켜보며, 석유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에게 언제 또 고유가의 고통이 불어 닥칠지 모른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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