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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스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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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스승이 있다
  • 전민일보
  • 승인 2015.10.29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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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에서 함께 수필을 공부하고 있는 H선생은 8순 노령이시다. H선생의 글 <10일간의 실버 사원>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연료비가 부족하다는 부인의 말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며칠 동안 야간경비를 하여 5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요양병원에서 허드레 청소를 하고 16만 원을 벌었으며, 손수레를 끌고 종이박스를 주워 22만원을 모았다. 88만 원을 부인에게 건네는 선생의 마음은 흐뭇했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노후생활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 내심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이제는 말보다 행실을 보고 배워야한다.

서영남 씨 하면 웬만한 이들은 안다.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인천 화수동에 문을 연지 11년째가 되는 민들레국수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하루 5백여 명의 노숙자와 독거노인들이 찾아와 식사를 한다.

그는 2013년 포스코 청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2억 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 돈으로 필리핀 칼로오칸에서 민들레 사업을 시작했다. 그곳은 태풍과 폭우로 자주 물바다가 되는 지역으로 얼마 전엔 큰 화재가 발생하여 노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영남 씨는 원래 수도원에서 수사생활을 하던 사람인데 세상에 나와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겸손하고 온화하며 남을 돕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산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온갖 범죄가 횡행하고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어도, 영남 씨 같은 사람이 있으므로 해서 사회가 지탱이 되고 희망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서 씨는 내게 소중한 삶의 길을 일깨워주는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그 같은 봉사는 할 수 없어도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족과 친척이 없는 어느 할머니의 외로운 죽음은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할 게 뻔한데, 독일의 변호사가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유언장을 공개하면서 그 사연이 언론에 알려졌다. 그녀가 남긴 5억여 원의 유산은 2백 명의 시민에게 돌아갔는데, 한 사람 당 250만 원 정도였다. 시청 복지과에 근무하는 목소리가 부드러운 남자 직원, 매일 아침 9시에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 시내버스 운전기사, 우유를 배달해 주는 아줌마 등 얼굴을 모르지만 당사자를 찾을 수 있도록 자세하게 유산 상속자들을 적어 놓았다.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유산을 받은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그 가족, 친구들이 할머니를 칭찬했다. 차츰 장애인들, 특히 시각장애인에 대한 봉사와 배려의 물결이 번졌다. 할머니의 유언장 한 장이 도시를 변화시킨 것이다.

부모가 남겨놓은 유산 때문에 가족들이 불화하고 법정에서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 사회다. 그 중 일부만이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도록 유언장을 쓴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할까? 하얀 지팡이 할머니의 일화는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알려주는 교훈이다.

위 세 사람은 요즘 발견한 나의 스승이다. 노년을 어떻게 살고, 삶을 정리할 때 어찌 해야 할지 가르침을 준다. 나는 오늘도 어디서 스승을 만날 수 있는지 애타게 찾고 있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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