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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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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
  • 전민일보
  • 승인 2015.03.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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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지표(指標)는 어떤 사물을 평가하는 데 기준이 되는 표적이나 표지를 일컫는다. 경기지표, 소비지표, 건강지표, 고용지표, 통화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표가 있다.

지난 1월 1일부로 시중에 판매하는 담배 값을 4천 원대로 인상하면서 가격이 오르지 않은 면세담배를 구입하려는 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 담배 값을 인상한 것이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조치인지 부족한 정부 세금을 채우려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귀촌한 초기 몇 년 동안 마을길에 널브러진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거의 날마다 주웠다. 요즘은 날씨가 아직 풀리지 않았고 너무 바빠서 매일 줍지 못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주로 새벽에 줍는다. 그런데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담배꽁초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담배꽁초를 발견해도 필터만 남기고 거의 다 태운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담배꽁초를 보면서 담배꽁초가 경기나 소비지표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담배 이름을 보면 대충 누가 피운 것인지 알 정도로 빤한 작은 마을에서 담배꽁초 주인장이 지금 처한 현실을 유추하면 대개 맞아 떨어진다.

라일락 담배꽁초는 인근 두부집에서 오랫동안 일한 형선 씨가 주로 피우는 것이다. 그는 작년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지금 집에서 1년째 놀고 있다.

에세 라이트 담배꽁초는 오랫동안 중장비 일을 하던 철호 씨가 주로 피우는 것이다. 그는 일거리가 없자 아예 중장비를 팔고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 요즘 집에 눌러 앉은 지 오래 되었다. 이들은 가끔 어울려 대낮부터 걸쭉하게 막걸리 판을 벌였다. 소문에 따르면 두 사람이 후배가 쓰는 양수기를 내다 팔았다는 말까지 들렸다. 마을길에 담배꽁초가 줄어들어 청소하는 수고를 던 것은 사실이지만 뭔가 뒤끝이 씁쓸했다.

“담배 값 절반가량 오르며 / 담배꽁초 가실 나락처럼 널린 / 동네 안 길 담배꽁초 부재중이다 / 보물 찾듯 어쩌다 보인 꽁초도 / 필터 머리까지 다 태워져서 / 쓰레기 줍는 일 수월해졌다 / 가진것 없어 한숨만 기른 사람들 / 들숨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 / 가슴에 진 응어리 태우고 / 날숨으로 날리는 담배연기처럼 / 허망한 삶 맘껏 내칠 수 없어 / 담배 대신 속만 더 태운다 / 가진 게 없어 본디 가벼운 삶 / 그 삶도 너무 무겁고 버거워 / 담배 태우듯 태워 날릴 슬픔을 / 이제는 제 안에 스스로 / 화석처럼 떠안고 살아야 한다”(졸시: 담배피는 사람들)

속 좁은 생각으로 마을길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를 보면 심사가 뒤틀어지고 담배연기를 재래식 화장실 냄새보다 맡기 힘들어 하는 입장에서 담배 한갑에 일만 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담배 값을 인상한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복잡한 셈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무겁고 힘든 삶을 담배를 피우면서 연기처럼 날려 보냈을 형선 씨와 철호 씨가 떠올랐다. 그들은 담배 값이 부담스러워 담배연기에 시름을 실어 날려 보낼 수 없는 녹록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 고달플지 모른다.

이 땅에 고달프게 사는 사람이 어디 형선 씨와 철호 씨뿐이랴. 수많은 경제적 약자, 장애인, 홀로 사는 어르신, 정당하게 대우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나 비정규직 근로자, 인권을 박탈당한 채 아침이슬처럼 스러져가는 약자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많다.

이들이 자신이 짊어진 고통과 아픔을 담배연기처럼 훌훌 날려버릴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줘야 한다. 이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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