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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진성여왕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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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진성여왕을 위한 변명
  • 전민일보
  • 승인 2014.12.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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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칼럼니스트

 
여전히 저명한 전직 원로 교수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서울 강남 지역에 출마했을 때 일이다.

그와 관련해 여자문제가 거론되자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거란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당시 일부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아니 총각이 여자 좀 만나는 게 무슨 문제야’그렇다. 그는 당시 환갑이 넘었지만 미혼이었다. 그럼 당사자가 여성이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삼국사기(三國史記)] 진성여왕(眞聖王) 본기(필자 주: 삼국사기에는 여왕이란 표현이 없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위홍(魏弘)이 죽으니 시호를 추존해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 하였다.”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의 편찬자로도 알려진 그 인물이다.

흥덕왕에 의해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 된 김유신(金庾信)과 더불어 신하로서 왕이 된 유이한 인물이다. [삼국사기]는 그를 왕의 간통남으로 적고 있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남편(匹, 夫)’으로 얘기하고 있다. 시각은 다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진성여왕과 위홍의 관계가 단순한 왕과 신하의 관계를 넘어선 남녀 사이었다는 점이다.

‘군왕은 무치(無恥)다.’라고 했으니 왕이 남성이었다면 관심 대상조차 될 수 없는 내용이다.

진성여왕을 혼군(昏君)으로 규정하는 것에 있어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명백한 성차별적 시각이다. 총각이 여자를 만나는 것이 죄가 될 수 없듯이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더군다나 그 당사가가 왕이라면.

[삼국사기]에서 언급된 진성여왕에 대한 기록에 대해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 위홍이 죽고 혼자된 여왕의 로맨스에 대해 [삼국사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몰래 아름답게 생긴 소년 두세 사람을 끌어들여 음란한 행위를 하였고, 그 사람들을 중요한 직책에 앉히고 나라의 정책을 위임하였다. 이로 인하여 아첨하는 무리가 방자하게 뜻을 펴고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상과 벌이 공평하지 않았고, 기강이 무너지고 해이해졌다.”우리는 여기서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기록에서, 진성여왕이 보여준 여자로서의 사생활 부분과 군주로서의 공적인 역할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그녀가 위홍이 떠난 자리를 대신해 다른 남성을 만난 것이 역대 군주와 비교해 비난받을 대목인가. 그렇다면 수많은 후궁(後宮)을 거느린 군왕은 물론 첩(妾)을 두고 살았던 일반 지배층 남성들의 행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방5현 중 한 명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조차 생물학적 후손은 첩 소생이다. 세종(世宗)을 비롯한 여러 성군(聖君)이 많은 여자와 관계했다 해서 그의 치적에 의문을 제기하진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로 진성여왕의 실정(失政)이 비판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남자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직 대통령과 관련해 불편한 얘기들이 사회를 흔들고 있다. 미혼인 여성 대통령에게 전직 남자 참모와의 스캔들을 얘기하는 것은 분명 금도를 넘어선 것이다.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본질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있지 않다. 국민이 묻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한 것이다. 진성여왕의 남자문제와 국정혼란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국정혼란에 대한 책임은 별도로 엄존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성 대통령이라서 겪어야하는 부당한 공격이라면 국민은 그 어둠의 세력을 향해 엄중히 경고함은 물론 심판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더욱 소통하고 투명하게 국민앞에 나서야한다.

진성여왕은 죽기 6개월 전인 897년 6월 조카 요(嶢)에게 선위한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다.

“근년 이래 백성이 곤궁하고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니, 이는 나의 부덕한 탓이다. 어진 이에게 왕위를 넘겨주기로 나의 뜻은 결정되었다.”진성여왕의 실정은 연산군(燕山君)이나 여타의 폭군들과는 다르다. 진성여왕 이후 한국사에 더 이상 여왕은 없다. 그 책임이 그녀의 몫인지는 의문이다.

다만, 그녀의 과오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그녀를 왕이 아닌 여자로 봤던 남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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