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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삶의 질과 까막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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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삶의 질과 까막눈
  • 전민일보
  • 승인 2014.11.05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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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 문화비평가

 
“애로가 많았지, 못 배워서.”
“모르는 게 있으면 답답하지.”
“서울 가도 글을 모릉게 갑갑혀.”
“입이 길이라고 무조건 물어보고 다녔어. 저기로 가라믄 저리가고 이리 가라믄 이리 가고 허다가 열두바퀴를 돌았어.”
“몰라서 못 읽으니 안 좋지.”
“편지 왔을 때 넘한테 읽어봐 달라고 했을 때 얼마나 챙피했는지 몰라.”
“테레비 나오는 글자라도 읽고 싶어.”
“노래같이 좋은 게 없는디 노래 가사라도 읽고 따라 부르면 좋지.”
“전화번호를 알아서 자식들에게 전화라도 걸믄 좋겄어, 받기밖에 못 혀.”

작년에 고창의 어느 마을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교육이 있었다. 교육을 처음 시작하면서 글을 몰라 불편했었던 점들을 말해보자고 하니까 보인 반응들이다. 의외로, 놀랍게도 시골 마을들에는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상당히 많다. 어느 마을은 절반 정도가 글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한글 창제 당시의 학자 정인지는 훈민정음을 가리켜 “지혜로운 자는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있고 어리석은 자일지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글”이라 했다. 그런데도 평생 방치되고 있다. 그이들이 게을러서일까.

1945년 78%였다던 문맹률이 해방 이후 대대적인 한글보급 운동으로 1958년에 4.1%로 뚝 떨어졌다. 문맹률로부터 해방되었으니 탈문맹정책은 당연히 사라졌다. 그러나 4.1%라는 게 함정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문교부 발표 통계이며, 하부기관으로부터 보고받은 간접조사방법에 따른 것이었다. 성인교육 성과가 부풀려졌을 수도 있다. 직접 표본조사를 실시한 중앙교육연구소는 1959년 12월말 현재 문맹률이 22.1%라 발표한 바 있고, 경제기획원의 1955년과 1960년 국세조사에서는 각각 21.0%와 27.9%로 집계되었다. 당시에 이미 문맹률에 대해 이론이 많았다.

결정적인 함정은 앞의 문맹률조사가 모두 12세 이상의 인구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취학률이 급격히 높아진 때가 1960년을 전후해서이니 194,50년대 태어난 지금의 6,70대 상당수 어르신들은 한글을 제대로 배울 사회적 기회를 갖지 못했을성 싶다. 한글교육 혜택을 받지 못해 까막눈 세대가 형성된 셈이다.

그 세대가 지금 농산어촌 마을들의 주류를 차지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농산어촌 마을들의 높은 문맹률은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문맹률은 감추어져 있다. 글자를 몰라도 아는 척 하는 사례도 있고, 지금까지 평생을 어찌 어찌 살아왔으니 지금도 어찌 어찌 살아가고 있다.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의 최첨단문명시대에 드러내는 민낯의 그늘이다.

우리 사회에서 삶의 질 담론이 거론된 지 20년 가까이 되고 있는 것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삶의 질의 근간지표라 할 수 있는 문해력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전혀 갖지 못하였다. 문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문해력이라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실질문맹의 문제와 깊이 연루된다. 글자를 알아도 공과금 납입고지서나 병원진료 영수증 따위들을 읽을 줄 모른다면 여전히 문맹일 수밖에 없을 손치더라도 우선 글자자체만이라도 알아야 이것저것 따져볼 자신감이 생기지 않겠는가.

사회적으로 까막눈 세대를 방치하면서 농산어촌 주민들의 삶의 질이나 복지 담론을 거론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까막눈이면서도 까막눈이라 말하지 않는 침묵이 가져다주는 고통과 불편, 나아가 손실이 일상생활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까막눈들이 글자를 깨치게 되면 천지개벽이라고 말하는 게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닐터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 열심히들 공부한다. 일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한 자라도 더 배우려 한다. 평생의 한이었을까. 한 할머니의 말이다. “부모 탓할 것 없어. 그때는 너나 나나 다 못 배웠지. 시집와서도 챙피한지 몰랐어. 다 모른게. 관심이 없었지. 각시 때 오빠가 가르쳐 줄라고 했는데 안 배웠어.” 자존심도 상하고 기억력이나 시력이 엄청 안 좋은 상태이지만 뒤늦게나마 글을 배우려 하는 까닭들이 있을테다. “이름을 쓰니 좋다”, 할머니는 난생 처음 써본 자신의 이름 석자를 들여다보며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삼락농정’의 갈 길이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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