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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결혼이민여성들 ‘이중언어 강사’로 제 2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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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결혼이민여성들 ‘이중언어 강사’로 제 2의 인생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3.01.30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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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결혼과 취업, 교육을 위해 정착한 외국인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도리어 세계화를 배척하는 용어로 고착화 되고 있으며, 우리의 이웃, 아이들의 친구들은 더 다양한 피부색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문화 가정에서부터 모국어와 한국어 모두를 정확히 가르치고, 다문화 아이들이 양국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전북도가 전북대학교와 부산외국어대학교와 손을 잡고 마련한 '동남아시아 언어교육 프로그램'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편집자주 

도내에선 결혼이민여성에 대한 다양한 적응 프로그램들이 운영중에 있다.

농촌 지원 정착을 위해 농협 등과 손을 잡고 농산물 가공식품 실습부터 공예지도사 과정, 직업교육까지 종류도 다채롭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되는 것은 결국 이들과 이들이 양육하는 자녀들의 온전한 정착일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원활한 의사소통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어가 더 익숙한 자녀에게 자신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자신의 언어를 하는 것과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또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의 경우 동남아시아 지역 결혼이민여성이 다수인데, 이들이 활용할 만한 언어 교수법은 전북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방도를 찾지 않을 순 없었다.

정확한 언어 교수법에 목말랐던 전북도는 지역대학들과 손을 맞잡고 언어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리고 첫 수료생을 만들어 냈다.

해당 교육 프로그램에선 결혼이민자들의 모국어 발음부터 쓰기 교육법 및 문법체계, 언어활용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쳤다. 부산외대의 노력과 협조가 특히 빛났다. 

이를 주도한 전제성 소장(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교육이 이중언어교육의 불모지였던 전북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소장은 "그동안 이중언어강사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자질이나 소양 등을 가르치는 수준에 그쳤지 언어 자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수법은 빠져있었다"며 "이들이 앞으로 이중언어강사로 활발히 활동하게 된다면 전북에서도 보다 정확한 제3언어를 배울 수 있는 토양이 마련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국에 정착해 통번역사로 활동해 온 김하연(31)씨는 이번 교육을 통해 제대로 된 언어교육법을 찾은 것 같다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베트남 출신의 김씨는 전주시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4년째 통번역사로 활동해 온 베테랑이다.

일상 민원에서부터 법원 통역까지 김씨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지만 이번 교육을 통해 훨씬 더 매끄러운 언어전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특히 어린 자녀를 키우는 김씨에게 언어교육은 뗄레야 뗄 수 없는데 아이에게 효과적으로 엄마의 언어를 가르쳐줄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기쁘다고 고백한다.

김하연씨는 "앞으로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 아이지만, 그래도 엄마의 언어도 알고 있어야 정체성이 바로설 것 같아 언어교육을 해왔는데 번번히 실패했다"면서 "2주간의 짧은 교육이었지만 아이가 어떤 지점에서 베트남어를 어려워했는지도 알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도 배웠다"고 말하며 더이상 아이에게 소리지르지 않고 언어공부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중언어강사교육을 수료한 베트남 국적 황수진(42)씨도 자신의 교수법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고 털어놨다.

베트남 문화를 가르치던 문화교육강사였던 황씨는 제대로 된 언어교육강사로 거듭나고 싶어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했단다.

황씨는 "문화를 가르칠땐 몰랐던 어려움을 언어를 가르치며 알게 됐다"며 "특히 이번 교육은 한국인 교수님에게 직접 배우면서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어에서 어떤 부분을 어려워 하는지, 왜 어려워하는지에 대한 주의사항을 몸소 익힐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교육이 어른 수강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수법이었던 만큼, 언어 흡수성이 높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교수법도 개발됐으면 한다는 개선안까지 내놓은 황씨는 이제 열혈 홍보대사다. 

결혼이민여성들을 대상으로 이중언어교육법을 가르치는 김향아(43)씨 역시 베트남 국적의 이중언어코치로서 이번 교육에 참여했다.

베트남어는 물론이고, 캄보디아어, 중국어, 일본어, 말레이시아어 등 다양한 국적의 결혼이민여성들이 자신의 언어를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강단에 서서 알려줘야 하는 김씨는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생긴 공백을 메꿀 수 있었다는 평을 남겼다. 

김씨는 "대부분의 결혼이민여성이고 교육학을 수료한 경우도 적어 아이들에게 엄마의 언어를 정확히 가르쳐주는 일에 대한 필요성은 알지만 방법을 몰라 헤메는 경우가 많았다"며 "저를 비롯해 더 많은 이주여성들과 그 아이들이 한국에 온전히 정착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이 열린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교육을 받았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2주간의 짧은 교육으로는 그간 쌓인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완전히 가시게 할 순 없었다는 이들은 이중언어교육이 보다 보편화 돼 더 많은 이주여성들이 용기를 내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기꺼이 드러냈다.

김하연씨는 이번 교육으로 통번역사 역할을 넘어 이중언어강사에도 도전장을 내밀 생각이란다. 벌써 한국외대로의 편입을 고민할 만큼 방향성도 잡았다.

김씨는 "이 교육과정을 받기 전까진 베트남어 강사라는 일이 나랑 안맞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삶의 전환점을 찾은 만큼 더 많은 교육을 받아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황수진씨 역시 이중언어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언어를 제대로 배운다면, 이 아이들이 자라 대한민국 사회에도 충분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단다.

황씨는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이 언어를 제대로 배운다면 밖에 나가서도 다문화를 응원받을 수 있고, 이들의 능력 향상이 결국 대한민국의 다양성을 키워주는 씨앗이 될 것이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며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향아씨는 교육에 대한 열망의 크기 만큼이나 한국에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입장에도 시야각을 더 넓히겠다는 각오다.

김씨는 "이번 2주 교육은 너무 짧았다"면서 애교있는 눈웃음과 함께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이주여성들의 입장까지 헤아리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중언어강습은 아직도 가야할 길,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사업 중 하나다. 연령대별 커리큘럼과 교재의 태부족은 이런 사업들이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작은 시도들이 모여 큰 물결을 일으킬 그날을 위해 오늘도 '엄마'들은 책을 펼친다.

그들이 풀어갈 책 끝에 전북의 다문화 인식이, 상황이, 포용력이 더 좋아져있길 바라본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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