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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은 사회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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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은 사회적 자산이다
  • 전민일보
  • 승인 2022.09.13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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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다. 반론이 있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병합에 반대하는 상대적 온건파였다. 이토는 조선의 국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보다는 괴뢰국으로 만들어 일본 영향 아래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희석시킬 수는 없다. 이토가 생각한 국권침탈 방식은 종국적으로 병합과 다를 바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방식이 초래할 후과(後果)는 한국민에게 또다른 고통을 안겨줄 개연성이 컸기 때문이다. 아일랜드가 배출한 위대한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했다. 그는 아일랜드인이었지만 동시에 영국계였다. 아일랜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달랐다.

예이츠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재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북아일랜드 문제의 근원도 이토와 같은 침탈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토의 죽음은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형식적으로나마 국가 체제를 유지했던 조선은 이토가 죽은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에 병합된다. 그런데 그런 거시적 상황만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토의 죽음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이었다. 불과 11세의 영친왕을 일본으로 데려간 이토는 그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적어도 영친왕 개인에게 이토는 자상한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불편한 진실 하나, 당시 메이지 천황을 비롯한 대부분의 일본 실력자들이 영친왕을 잘 예우했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영친왕에게 치명적인 덫이었다. 영친왕은 인질로 끌려 간지 56년이 되던 1963년 귀국한다. 놀라운 것은 그 기간 거의 일본어로만 얘길 해야 했던 그가 한국어를 잊지 않고 유창하게 구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51년에는 한국어 교본을 영어로 발간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영친왕이 귀국해 병사하지 않고 한국인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의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는 물론 조선왕실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시 일본 정객들 중엔 이토의 죽음을 부러워한 사람들이 적잖았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자연사나 병사(病死)는 그들이 생각하는 지사(志士)의 죽음(?)으로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토의 최후는 그들에겐 부러운 죽음이었다.

죽는 이유와 시기 그리고 방식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한 가지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종말을 앞에 둔 시점의 일본인에게 이토의 죽음은 공적(公的)인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를 수 있다.

영웅사관을 배격하고 건조하게 말한다고 해도 공적(公的) 죽음이 그 사회구성원과 후대 역사에 끼치는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은 여전히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군인의 죽음을 넘어서 한국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규정하는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슬픔을 담아낼 죽음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죽음 자체가 얼마나 손쉬운 선택인지를 반증하는 사례로 넘쳐난다. 삶이 어려워서, 너무도 억울해서, 불명예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흉악한 범죄자까지도 자신의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다.

공적인 죽음은 사라지고 개인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죽음만이 넘쳐나는 사회는 신뢰와 존경대상을 찾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한 사적 영역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삶을 규정하는 고귀한 열매를 상실하는 것과 같다.

구성원 모두가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공적(公的) 죽음은 그 자체로 그 사회의 결속과 건강성을 표시한다. 분단된 남과 북은 그 점에서도 극단적인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다.

남과 북은 각자 평가하는 공적 죽음의 기준과 대상이 다르다. 어쩌면 분단의 최종적 극복은 그 기준의 합의에 있는지 모른다. 분열된 미국을 통합으로 이끈 링컨의 죽음은 오늘을 사는 미국인의 소중한 자산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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