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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는 정말 자유로운가?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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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7  09: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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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은 과연 누가 한 것인가?

주인공이 스피노자(Spinoza, Baruch De)가 아닌 루터(Martin Luther)라고 해도 그 말속에 담긴 메타포가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주인공이 스피노자로 언급된 어느 순간의 오류가 계속되고 있다면 바로잡아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스피노자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지식도 변한다.

한국 문화로 접근한다면 ‘변강쇠’에 부합하는 이름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다. 셰익스피어는 ‘창을 흔든다.’는 의미로 그 자체가 노골적인 성적메시지를 담고 있다.

굳이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데카메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창은 중세유럽인들에게 남성 성기를 의미했다. 대문호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의문을 가진다.

계층도 미천하고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인물이 어떻게 그런 걸작을 창조한 위대한 영혼이 될 수 있었는가? 이것은 차별적 발상이 아닌 합리적 의심에 가깝다.

분명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남긴 작품 상당 부분이 표절(?)에 의해 이뤄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감안해야할 사항은 셰익스피어 당대엔 표절 논란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변의 소중한 원석을 취합해 빛나는 보석으로 가공한 셰익스피어의 업적은 평가받아야 한다.

빛나는 결과는, 때로 시작과 과정 모두에 대한 미화를 창조한다. 스피노자나 셰익스피어뿐 이겠는가.

신화와 미담 그리고 감언(甘言)엔 반드시 검증이 따라야하는 이유다. “내가 강남에 살아봤는데 강남 살 필요 없다.”거나, “내 아이를 외고에 보내봤는데 그거 다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강남 좌파’라 부르는 것이 합당한 지에 대한 의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강남 좌파’라는 말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임감과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기득권층에게 우리는 강남 좌파라는 헌사를 보내야 한다.

최초의 ‘샴페인 사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가이자 폭군 네로의 스승으로 정치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논외로 하고 놀라운 것은 그의 재산이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지구상 최고의 부자가 소유하고 있는 부의 4배에 달했다는 세네카의 재산은 대한민국 1년 예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강남 좌파와 샴페인 사회주의자 그 자체가 아니다. 계급의 이익에 충실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것에 역행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것이 지도자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계급 모순에 대한 자정능력을 통해 그 사회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현하는데 이 보다 더 적합한 사례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모든 것을 가진 이가 없는 이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겠다는 자발성을 실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그런데 세네카는 자신의 그 막대한 부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없는 이에게 더 줘야한다. 그런데 내 것 말고 우리 모두의 것을 나누면 된다.’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 강남 좌파이고 샴페인 사회주의자라면 적어도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의지를 실천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권리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문제다.

‘임신 순번제’가 비인권적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문제는 그에 대한 비난 대상이 누군가이다. 그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돌아갈 주홍글씨가 아니다.

근무인원 5명이 필요한데 3명이 결원이 되고 2명이 그 짐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응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때로 현장에서는 대체인력이라는 제도가 남겨진 사람에게 또 다른 짐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이해와 무관한 문제에서 고통 받는 사람의 입장은 외면한 채 고귀한 담론만 일삼는 것은 그 자체가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동이다.

모든 사람이 우는 것을 보고 내게도 슬픈 마음이 생겨 울었다면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다. 나도 굳이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망하다. 내겐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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