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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그림자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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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5  09: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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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있다. 스승의 권위가 그야말로 절대적이던 시절, 마치 군주가 가지고 있는 것과 비준할만한 권위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존재하던 시절의 얘기다. 그런 ‘군사부일체’의 체계에서 제자는 그저 스승의 가르침을 좇을 뿐이라 하여 스승과 제자 사이를 사도(師徒)라 불렀고, 이 사도는 존경과 경외함으로 가득한 발걸음이기에 감히 스승의 그림자영역, 가까운 사적영역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터부처럼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문구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 스승의 도리인 사도(師道)를 살피면서도 왜 조상들은 스승의 그림자를 밟으면 안 된다고 하며 굳이 ‘그림자’를 경계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오랜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참으로 단순하고도 명쾌했다. 배움에 대한 선조의 지혜가 담긴, 그리고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야 할 진리가 이 말 속에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먼저, 스승을 좇는 제자가 따라야 할 대상은 스승 그 자체이지, 스승의 그림자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그림자는 스승의 실상이 아닌 허상일 수 있고, 허상을 따르게 되면 가르침을 오해하거나 곡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처럼, 허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 실상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또한 그저 눈앞의 그림자를 답습하기에 급급하여보다 낮은 배움의 단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므로 청출어람을 방해하기 쉽다. 모든 배움의 끝은 단연 청출어람이라서 스승에게 기초를 배우고 익혀 더 나은 것으로 발전해 나가야 되는 것인데 그림자만 보며 좇아서야 스승의 실상, 그 진리의 크기를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냐는 것이 첫 번째 터부의 의미가 될 것이다.

또, 그림자는 어둡고 음습한 것으로 그 이미지대로 스승의 어둡거나 그른 면을 뜻할 수 있다. 스승의 훌륭한 모습을 넘어서 어둡고 부정적인 사사로운 모습까지 보게 된다면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인격적으로 감화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스승이 가진 지식의 크기와 수준이 아무리 크고 높다 하더라도 경외하는 마음으로 스승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 스승을 좆아 그 지나온 길을 살펴 탐구하는 것이 배움이라면, 스승의 부정적이거나 비교육적인 부분은 의도적이라 할지라도 제자로부터 배제되어져야 한다는 지혜가 이 옛 말에 담겨있다고 해석된다.

특히 최근 교사의 권위가 급추락하고 있는 실정 역시 배움의 목적이 실리주의로 변질되고 공교육만이 아닌 사교육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미디어마저 범람하게 되자 교사들의 사생활과 그림자들이 너무나 쉽게 노출되고 이슈화되는 현상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케케묵은 ‘스승의 그림자’를 내세워 그림자의 영역에서 교육수요자들을 밀어내야 하는 것일까. 사도가 땅에 떨어진 것을 두고 그림자의 영역에 감히 발을 들이댄 학생과 학부모의 탓을 해야 되는 것일까.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그림자가 버젓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숨길 수도 없고, 숨겨서도 안 되는 사회가 이미 되어 버렸다.

사회가 바뀌면 진리도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계속 유용한 진리로서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다. 스승의 그림자가 사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문제의 핵심은 이‘그림자’에 있는 것이다. 이 그림자는 외면한 채 체제만 고치려 든다면 문제는 지속될 뿐 아니라 점점 심각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먼저 교사들 스스로가 ‘그림자 없는 스승’이 되도록 그림자를 제대로 알고 관리해야 한다. 그림자가 학생들에게 무의미한 허상이나 스스로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헛점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그림자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자로부터 나쁜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교사가 자신의 그림자를 잘 관리할 수 있을 때, 개별 학생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 또한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실 내 교사와 학생 간 소통부재의 대부분은 그림자 싸움인 경우가 많다. 학생이 교사의 그림자를 꼬투리 잡아 비인격적인 비방을 하는 경우가 있고, 교사 역시 학생의 그림자를 실상으로 받아들여 낙인 삼아 학생을 오해하거나 이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로가 상대의 그림자를 밟는 격이다. 그림자를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이제는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한 사람의 교사로서 ‘좋은 시절’이라고 느낄만한 시절의 옛 말이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얼마나 갈고 닦아 노력해야 하는지가 느껴지는 어구다. 스승의 그림자가 없거나, 제자가 다가올지언정 그림자가 노출되지 않을 정도로 정진한다는 것, 오늘의 교사들도 이 옛 지혜로 좀 더 자신의 그림자를 살펴 스스로의 권위를 높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또한 더 나아가 사제 간에 함께 그림자 존중하기 교육이 이루어져 실천된다면 모두가 행복한 교실, 교사도 학생도 더욱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김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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