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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수단으로서의 이념과 실용주의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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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31  09: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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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필자가 선출직 공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 여당내에 이념파와 실용파의 정책노선 경쟁이 있었다.

이념파는 주로 운동권 출신들이었고 실용파는 주로 관료출신들과 비례대표로 들어온 전문가들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보유세 강화, 지역균형발전 등 사회구조를 튼튼히 하는 어젠더를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 등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하는 어젠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념파와 실용파의 균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여당 구성을 보면 당시의 이념파들이 주류가 되고 실용파들은 거의 도태되었다.

어쩌면 현정부에 들어서서 정책에 경직성을 보이고, 특히 방향을 잘못 잡은 경제정책으로 나라가 흔들리며 갈수록 정부에 대한 지지가 하락하는 것도 그 뿌리는 이념과 실용주의 사이에 균형을 잃은 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을 보자. 트럼프 대통령 집권초기에 백악관과 내각에 들어간 안보와 경제분야의 실용적 전문가들이 거의 도태되어, 내부 견제 없는 단일 대오로 국정을 운영하게 되면서,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성향의 퇴행적인 정책 추진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온세계가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도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일인 지배가 강화되면서 반대파들이 거의 밀려나고, 실용적 접근 아닌 중국 중심의 패권주의를 추구하면서 국제사회의 집중 견제를 받게 되어, 성장이 꺾이고 중국의 위상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념과 실용주의는 모두 다 어느 시기, 어느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이다. 이념은 이원론적이고 실용주의는 다원론적이다.

이념은 단순 명쾌한 반면에 실용주의는 복잡다기하다.

이념가 (ideologue)들은 옳고 그름의 언어를 즐겨쓰고, 실용주의자(pragmatist)들은 타당성과 효율성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념과 실용주의는 언뜻 보면 대립적인 개념이지만,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상호작용하면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동적인 과정의 일부다.

한 사회의 주된 문제가 분명하고 이를 해결하는 길이 명확하나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때에는 이념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가 분명하지 않거나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이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실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가 분명해지고 해결책을 찾게 되면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그 해결책은 상당 기간 이념화된다.

일단 이념화되면 관성이 붙어, 이념가들은 그 이념이 왜 생겼는지를 잊어버리고 해결해야 될 문제가 바뀌어도 자기들이 추구하던 이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문제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과거의 이념만을 고집했던 조선시대 후기 주자학자들도, 냉전 시대의 이념만을 고집하고 있는 현재의 북한 공산주의자들도 진화에 실패한 이념가의 전형이다. 항상 옳은 이념은 없다.

지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이념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국의 산업화 이데올로기와 민주화 이데올로기도 그 수명을 다했다. 현재 인류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들은 크게 보면 기후환경변화, 성장저하, 양극화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양극화에 대해서는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온 세계의 정치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선진국들만 봐도, 미국에서는 별난 대통령이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워 온 세계를 교란시키고 있으며,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 실행을 두고 혼돈 속에 있다.

프랑스는 좌도 우도 아닌 젊은 대통령을 선출했으나 현실적 이해관계의 벽에 부딪혀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전통적 스타일의 지도자가 난민정책 등 현안들을 해결하지 못하여 퇴진 준비를 하고 있다.

다수의 신흥국들에서도, 극좌와 극우를 오가며 정권이 바뀌고 있으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과거의 이념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사회가 그리고 인류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자세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채수찬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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