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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갑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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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갑의 가치
  • 전민일보
  • 승인 2017.01.05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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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방이 아주 냉방인데 보일러 좀 틀지 그러세요?”

“섹유가 다 떨어졌어.”

집 근처에 어렵게 살고 계신 분이 있다는 얘기를 우연한 기회에 전해 들었다.

한번 찾아뵈어야지 하고 마음을 품고 있던 참에 기회가 닿아 방문하게 되었다.

단독주택의 세 평 남짓한 단칸방에 팔십이 넘으신 할머님과 초등학교 3학년생의 손자가 함께 살고 있는 조손가정이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 할머님은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전기장판 위에 앉아 계셨다. 나는 간식거리가 든 비닐봉투를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만져보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왔다.

“할머니, 손자는 어디 갔어요?”

“아까까지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밖으로 놀러나간 모양이여.”

“찾아오는 가족은 있으세요?”

“아무도 없어, 외아들이 있었는데 5년 전에 죽었제.”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구청에서 매달 나오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혀.”

나는 구멍가게에서 사들고 온 따끈따끈한 찐빵과 따뜻한 베지밀을 드리고 할머님이 들려주시는 가정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천식을 앓고 계시는지 가끔씩 기계음 같은 쉰 기침 소리를 내시며 할머님은 고통스러웠던 삶의 질곡을 메말라버린 눈물을 흘려가며 무덤덤하게 풀어 놓으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아니 벌써 가려구?”

사실 나는 삶에 지치고 외로움에 고달파 하시는 할머님을 위로도 해드리고 말동무가 되어 드리려고 했지만, 더 이상 앉아있기 괴로울 정도로 방이 너무 추웠다.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를 둘러대고 나는 급히 일어섰다.

“할머니, 제가 바빠서요. 다음에 또 찾아올께요. 안녕히 계세요.”

“그려, 고마워유, 잘가유.”

나는 대문을 열고 나왔다. 밖은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직도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이 우리 주변에 정말 있구나.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없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담배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나갔다.

그 때 문득 내 머릿 속에 전구가 반짝 켜졌다.

‘바로 이거다. 담배 값을 모아 좋은 일을 한번 해보자’

그후로 나는 2002년 12월부터 하루에 담배 한 갑씩 저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한달 평균 약 10만원의 담배 값이 모아졌다.

여기에 용돈을 절약한 돈을 합쳐 매월 10킬로그램짜리 쌀 10 포대씩 구입할 수 있었다.

“모모 과장님, 변변치 않지만 매월 1일자로 쌀 10포대씩 보내 드릴테니 어려운 가정을 선정하여 도와주세요.” 이렇게 해서 나는 매월 쌀을 구입하여 모모 기관으로 보내고 있다.

나는 담배를 20년 전에 끊었지만 지금도 담배를 끊는다는 심정으로 담배값을 절약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연기로 사라질 담배 값. 그 연기를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늘로 사라질 연기를, 건강에 해로운 연기를, 안 태우고 안 마셔서 환경도 생각하고 건강도 유지한다면 그 이상 좋은 게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웃사랑은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작은 정성과 나눔과 배려의 정신과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외투 깃을 곧추세우고 집을 향해 잰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하늘에서 함박눈이 펄펄 나리기 시작한다.

“할머니, 올 들어 처음으로 한파주의보가 내렸는데 오늘은 꼭 보일러를 틀고 지내세요.”

나는 오늘 하루도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내실 옥분이 할머니를 생각하며 담배 한 갑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 본다.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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