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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벽산(紅塵碧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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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벽산(紅塵碧山)
  • 전민일보
  • 승인 2016.12.2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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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얼까. 마음이 무얼까. 난 네게 대답했지. 마음이 무얼까. 모르겠어.” ‘정새난슬’이 만든 첫 번째 앨범 『다 큰 여자』, 두 번째 트랙 「클랩함 졍선역으로 간다」에 나오는 가사 일부이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차정식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가사가 서정적이고 선율이 맑아 마음을 흠뻑 적셨다.

특히 “마음이 무얼까”를 반복하여 묻고 나서 “모르겠어.”라고 갈무리한 부분은 시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세상살이를 하면서 마음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마치 경마장을 달리는 말처럼 누군가를 추월하려고 속력을 붙이며 산다. 이러다보니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고, 길섶에 핀 풀꽃을 내려다보거나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볼 겨를이 없다. 그래서 가슴이 메마르고 생각이 딱딱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누구로 살지 못하고 각자가 등을 돌리고 섬처럼 떠다닌다. 새밑이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 대부분 사람은 마음이 바빠지기 마련이다. 한 해 동안 할 일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아 조급해지고, 다른 사람보다 뒤쳐진 것 같아 쓸쓸해진다.

이럴 때 마음을 잘 붙잡으려고 조심하지만, 손우물에 있는 물처럼 쏙쏙 빠져나가기 일쑤이다.

옆은커녕 뒤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우리는 길을 가다 몇 번쯤 뒤돌아봐야 한다. 발자국은 잘 따라오는지, 멀쩡하다고 믿는 것 속에 솎아내 버릴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속 깊이 간직해야 할 사연을 혹시 잡동사니로 버리지 않았는지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한다.

앞만 보고 가는 것은 보행이 아니라 이기이다. 눈 맑게 뜨고 오던 길 다시 돌아봐야 한다. 혹 애절하게 이름 부르며 함께 가자고 부르는 사람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여유는 먼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 우리 삶은 얼마나 속력을 내며 사느냐보다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속력의 노예가 되어 가속페달을 밟고 오로지 질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서로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이다. 그래서 아무 일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 것 같아 괜히 불안해한다. 그래서 앉아 있거나 누워 있지 못하고 달린다.

꽃밭에서는 꽃냄새가 나야하고 바다에서는 갯냄새가 나야한다. 그래야 꽃이 꽃답고 바다가 바다답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냄새가 훈훈하게 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상대를 짓밟아야 할 경쟁자로 여기기 때문에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냄새가 나지 않고 피 냄새가 난다.

운전하면서 길바닥에 쓰러져 죽은 들짐승이나 산짐승을 가끔 본다. 이들은 속력에 희생된 것이다. 속력에 희생된 것은 이들뿐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우리가 만든 속력에 죽어가고 있다.

산중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평화스러우면 그곳이 곧 산중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조용할 수는 없다. 깊은 도량으로 출가한 수도승이 아니고서는 세상이 들려주는 소음을 어차피 듣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도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소음에 불과하다. 천국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고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아직도 쌀 한 톨, 밥 한 공기 되지 않는 글을 쓰는데 목을 매달고 있다. 그래서 끼니는 허기와 함께 찾아왔고 허기는 끼니와 함께 굴러왔다. 글과 새살림을 차린 지 오래 되었는데도, 아내는 도둑질이나 배워오라며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이런 아내 때문에 쫄쫄 굶어도 아침이 내 맘속으로 고요하게 찾아왔다. 농협에서 상환금 독촉장이 몇 번 날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부자이다.

올 한 해가 아직도 보름 이상 남았다. 내가 쓴 글이 추잡스럽지 않게 마음을 깨끗하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집을 낼 때마다 빚이 늘지만, 내가 쓴 시가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넓게 먹으려고 한다.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생각하면 가난뱅이가 된다. 그러나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부자가 된다.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인색해진다.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면 너그럽고 후해진다.

홍진벽산(紅塵碧山), 시끄럽고 추한 속세인 인간세상도 어떻게 마음먹고 마음 쓰느냐에 따라 푸른 산중이 된다. 이 고요한 산중에 앉아 시심에 깊이 빠지니 천하에 나보다 더한 부자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푸른 기와집에서 모 재단을 설립한다며 기금을 내라고 연락 한 번 한 적 없었고, 국회 청문회장에 한 번도 불러나간 일이 없다. 이래저래 나는 참 행복한 갑부이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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