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6 17:48 (금)
소시민과 영웅
상태바
소시민과 영웅
  • 전민일보
  • 승인 2016.12.14 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꿈이 가지는 놀라운 존재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만일 배를 만들고 싶다면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마라. 대신 저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그런데 작은 의문이 하나 생긴다. 과연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고 또한 그럴 필요가 있을까. 배를 만들기 위해 원대한 꿈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배를 만들기 위해선 목재를 가져오고 일을 지시하며 일감을 나눠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없이 원대한 소망만으로 배를 만들순 없기 때문이다. 배 만드는 것뿐이겠는가. 세상사 모든 것이 영웅의 걸출함만으로 이뤄질 수 는 없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겐 유능한 참모와 더불어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 수많은 무명용사가 있었다. 충무공과 무명수병의 차이라면 그 역할의 차이와 함께 영웅에게 요구되는 가혹한 자기관리에 있다. 영웅의 삶이 결코 개인적 행복까지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하고, 서구의 유력지에서 인류의 최근 1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한 인물, 바로 징기스칸이다. 하지만 그가 가정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징기스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가 납치한 여인이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상대부족에 의해 독살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번엔 징기스칸의 아내인 보르테가 적에게 납치된다. 후일 보르테를 구출하지만 상처가 없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장자인 주치다. 징기스칸에겐 이후 세 명의 아들이 더 생긴다. 차가타이, 오고타이 그리고 툴루이까지. 문제는 징기스칸과 보르테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이 주치를 징기스칸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원정 총사령관인 바투는 주치의 장자이자 징기스칸의 장손자였지만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 징기스칸에게 가정의 행복까지 허락되진 않았다.

그럼 징기스칸은 어떻게 영웅이 됐을까. 징기스칸은 평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배우지 못해서 항상 남의 말을 경청한다. 나의 스승은 바로 나의 귀다.”

징기스칸은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징기스칸의 군대는 천하무적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지휘한 군대를 이렇게 평가했다.

“당나귀가 이끄는 사자부대보다 사자가 이끄는 당나귀부대가 더 강하다.”

영웅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지 알려주는 사례는 한국 현대사에도 보인다.

김일성, 팽덕회와 함께 휴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마크 클라크 장군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한국전쟁에는 미군 장성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사망, 실종, 부상을 당했다.”

그가 얘기한 35명엔 그의 외아들도 포함된다. 죽는 순간까지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인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도 한국전에서 전사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실종된 자신의 아들을 수색하려는데 대해 직접 작전 중단을 요청한다. 그는 슬픔을 감추고 이렇게 얘기한다. “내 아들을 찾기 위해 또다른 사람의 소중한 아들들이 희생되게 할 수 없다. 내 아들은 한국전에 참전해 희생된 수많은 미군과 마찬가지로 명예롭게 전사했다. 내 아들만 특별할 순 없다.”

밴 플리트 장군은 97세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아들을 그리워했지만 혹시라도 아들의 유골이 발견되면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다고 아들만 떠나보낸 것이 아니다.

아버지 월턴 워커 장군과 함께 참전한 샘 워커는 아버지가 전사한 후 장례를 마치고 한국 귀환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맥아더 장군은 “부자가 함께 전사하는 비극을 볼 수는 없다.”며 자신의 부관으로 근무하길 청했지만 그는 야전을 고집했다. 후일 샘 워커 장군은 미군 역사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4성 장군에 오른다.

오늘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지금 우리에겐 어떤 영웅이 있는가.

아니 좀 더 적확(的確)하게 말해보자. 과연 어떤 지도자가 있는가.

분명한 사실은 역량이 안 되는 사람이 자리에 오르면 자신만이 아닌 공동체 모두가 불행해진다. 그렇다고 소시민의 행복이 폄하될 이유는 없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