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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호 화백 “작품은 재로 사라졌지만, 다시 무에서 유 창조할 것”지난 12일 작업실 '청우헌' 전소···평생 역작 잿더미
임충식 기자  |  94chy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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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15  23: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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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5시 45분께 완주군 상관면 내야마을의 한 조립식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목보일러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10대에 가까운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불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화재는 건물(82㎡)을 다 태우고 진화됐다. 소방서 추산 피해금액은 1932만원이었다. 하지만 피해금액 산정에서 빠진 것이 있었다. 노년의 화백이 평생 열정과 정성을 쏟아 부어 완성한 작품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백당(白堂) 윤명호(75) 화백의 작업실, 청우헌이었다. 이번 화재로 작업실 뿐만 아니라 평생의 역작 70여점이 재로 변했다. 윤 화백에게 있어서는 가치로 환산하기 불가능한 보물이었다.

16살에 붓을 잡은 뒤 60년 가까운 세월동안 열정을 쏟아 부은 작품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윤 화백은 의외로 담담했다. 윤 화백은 “이제는 작품 인생을 마무리하는 전시회를 열고픈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불편함이 있었다”면서 “그러던 와중에 불이 나면서 잡념이 사라졌다”고 웃었다.
   
▲ 윤명호 화백

한국화 화가인 윤 화백은 26년 전 지인의 도움을 받아 내아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아마을에 변화가 시작됐다. 단조롭던 마을 담벼락과 집 벽면은 윤 화백의 손길을 통해 커다란 작품으로 변했다. 수려한 산수가 벽을 수놓고, 담벼락은 우거진 수풀로 물들었다. 내야마을은 윤 화백에 있어서 커다란 미술관이었다.

마을주민들도 윤 화백의 이 같은 행보에 마음을 열었다. 화재 당시 발을 구르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던 이유도 내아마을을 사랑하는 윤 화백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윤 화백은 “이제 무일푼이 됐지만 효녀 딸이 있고, 항상 응원해 주는 팬(이웃)들이 있어서 괜찮다”며 웃음을 보였다. 또 “예전에 그랬듯이 다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갈 생각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은 달랐다. 플루트 연주자인 딸 수연씨(43)는 “수묵화 화가로서 살아온 60년 인생이 한 순간에 날아간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면서 “어서 빨리 다시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팬(마을주민)들의 마음도 같았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윤 화백은 내아마을 뿐 아니라 상관면, 더 크게 완주군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이제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됐다”면서 “그 동안 받았던 사랑을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윤 화백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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