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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비극(悲劇)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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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비극(悲劇) 감상
  • 전민일보
  • 승인 2016.02.0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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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은 중원을 차지한 후 자신들을 이렇게 정당화했다. “명(明)을 멸망시킨 것은 이자성이고 청(淸)은 무도한 자를 대신해 천명(天命)을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자성의 농민군이 자금성을 함락할 당시 명이 보유한 실제 병력은 병적에 기록된 명부의 1할에 불과했다. 뇌물(賂物)로 대부분 군역을 면제 받았기 때문이다. 어둠의 역사는 서양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조세징수권을 개인에게 판매했다. 징수자는 자신이 거둬들인 세금의 25%만을 왕에게 바쳤음에도 조세수입은 4배로 급증했다. 17세기 영국에서도 이런 한탄이 나왔다.

“독점권자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세수나 빨래도 할 수가 없고 술을 마시거나 카드놀이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성경도 읽을 수 없다.”

한국사에도 병역과 세금 그리고 뇌물 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뚜렷하다.

대동법(大同法)이 처음 시행된 것은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한 1608년이다. 이원익(李元翼)의 주장에 따라 경기도에 처음 시행된 가운데 숙종(肅宗) 34년인 1708년에 황해도까지 실시됨으로써 평안도·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시행된다.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데 100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새로운 토지세인 대동세를 부담하게 된 양반지주와 중간이득을 취할 수 없게 된 방납인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방납인들은 서양의 징수자나 독점권자의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병역과 세금이 결부되어 나타난 것이 군포(軍布)다. 국민개병(國民皆兵)이 무너지고 모병제가 실시되면서 병역은 군포 2필을 바치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아울러 군포는 국가재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군포가 여러 폐단을 일으키자 2필의 군포를 1필로 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균역법(均役法)이 공포된다. 그럼 영조(英祖)의 바람대로 됐을까.

먼저 균역법은 의도와 다르게 조선의 국방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조선이 멸망하는 순간 조선군의 존재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곪아 터진 상처의 정점은 이미 세도정치 시대에 나타난다. 바로 [애절양(哀絶陽)]의 시대가 된 것이다. 정약용(丁若鏞)이 실제 목격한 사실을 바탕으로 지은 이 시에는 당시 농민이 처한 처참한 상황이 잘 나와 있다.

“시아버지 상에 이미 상복 입었고, 애는 아직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백골징포(白骨徵布)와 황구첨정(黃口簽丁)이다. 비극의 정점은 스스로 거세한 남편의 모습을 보고 울부짖는 아내의 처절한 목소리다.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이치기에, 하늘의 도는 아들 되고 땅의 도는 딸이 되지, 불깐 말 불깐 돼지도 서럽다 할 것인데,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폭력이 한국사만의 것이라 얘기할 생각은 없다. 주목해야할 것은 지난 비극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의 문제다.

뉴스를 보는 것이 섬뜩하다. 아동학대를 너머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잔혹한 행위의 당사자가 친부모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가 된다. 노인학대라고 다르겠는가. 그 뿐 아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편의 활극을 보여준 건장한 보호자(?)는 가히 황제 부럽지 않다.

폭행을 감내하는 장애인과 그것을 공포에 질린 채 바라봐야 하는 주변 장애인들에게 그는 절대자다. 이 뿐인가. 수많은 갑(甲)은 을(乙)을 대상으로 존재감을 확인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을 중엔 또 다른 을에게 제대로 된 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존재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제일 많은 부수를 발행하는 신문에는 이런 명칼럼도 실리지 않았는가. [간장 한 종지], 그는 이 칼럼을 통해 우리에게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게 해준 통찰을 보여줬다.

그가 간장 한 종지를 통해 분노한 현실과 대상은 가히 이 땅의 제대로 된 갑이 무엇인지를 확인시키기에 부족하지 않다. 우린 더 이상 비극을 감상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넘쳐나는 비극의 시대에 더 이상 그 어떤 희곡이나 시나리오가 현실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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