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을 살해한 뒤 교통사고를 위장해 보험금까지 타낸, 일명 ‘패륜 모자’ 사건이 최종 마무리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백모씨(60·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백씨의 상고를 기각,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또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37)에게도 징역 2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법리오해 및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기각이유를 밝혔다.
‘패륜 모자’ 사건은 올해 초 도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또 수사당국의 끈질긴 노력 끝에 9년 만에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지난 2006년 12월 25일 오후 9시께 정읍시 칠보면 칠보삼거리에서 SUV차량이 신호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SUV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었던 김모씨(당시 54·정읍시청 공무원)가 숨졌다.
가해 차량에는 김씨와 둘째 아들(당시 28세)과 부인 백모씨(당시 51세)가 타고 있었다. 당시 이들은 둘째 며느리의 병문안을 마친 뒤 식사를 하러 가던 중이었다. 운전은 둘째 아들이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김씨가 유일했다. 둘째 아들과 부인은 물론 사고를 당한 승용차 운전자도 멀쩡했다.
애초 이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됐다. 부검도 없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정황 등이 속속 드러났다.
가해 차량인 SUV 차량의 주행속도가 시속 37.63km에 불과했고, 사고 1시간 30분 뒤 촬영된 김씨의 사체 사진에서 시반(시체에 피가 고여서 나타나는 반점으로 보통 사망 3시간 후 나타남)이 있었던 점, 김씨 명의로 가입된 보험이 14개에 달하는 점 등도 의문스러운 대목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다. 피해차량 운전자였던 최모씨는 수사기관에 “백씨가 남편을 살해한 뒤 보험금과 퇴직금을 나눠 갖자는 제안을 받았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응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숨진 김씨의 아내와 내연관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에 나선 정읍경찰서는 지난 2009년 일단 백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구속했고, 유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재판에 넘겨진 백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둘째 아들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살인죄 입증을 위한 수사는 계속됐고, 전주지검 정읍지청은 지난해 말 백씨에게 살인, 둘째아들에게는 존속살해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기소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모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지 살해한 것은 아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또 “범행 일시 및 장소, 살해 방법 등이 특정돼 있지 않은 만큼, 공소제기 자체가 부적합하다. 또 이미 한 차례 처벌을 받은 만큼,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보험금 편취를 위해 남편이자 아버지를 살해했고,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공모한 점 등에 비춰볼 때 그 죄책을 용서받기 어렵다”며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유족들의 선처 탄원 등을 이유로 백씨는 15년으로, 둘째 아들인 김씨는 22년으로 감형됐다.
임충식기자